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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수 시인 / 바람이여, 꿈이여
그대 닿는 길목에 피어나는 꿈결바람이고 싶다
그대 입술 촉촉이 적셔주는 진한 꽃바람이고 싶다
내생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대 가슴에 싱그럽게 불어갈 바람이여
아, 멈출 수 없다 붉게 타오르는 영혼의 떨림
빛나는 황금 깃털처럼 그대에게 머물고 싶은 바람이여
이혜수 시인 / 백일홍
백일동안의 치명적 사랑
꽃구렁 산하늘이 꽃그늘에 무너진다
핏빛 그리움 그대 사는 남쪽, 하늘심장에 혼불로 타오른다
이혜수 시인 / 하늘 불립문자(不立文子)
이 한밤 누가 늘어뜨려 놓는 검은 화선지냐 하염없이 송이송이 내려오며 한 땀 한 땀 지상에 새겨놓는 저 무수한 하늘의 불립문자들(不立文子)
끝내 화선지 허공에 새겨놓지 못한 말씀들은 땅으로 내려오면 담벼락 넝쿨나무에 길바닥 발자국에 옥상에, 문지방에 촘촘히 희디흰 상형문자들 새겨 놓는구나
그러고도 차마 하늘에 다 새기지 못한 사연이련가 새벽에야 마음 문 열고 세상을 빠끔히 내다보니 아, 저리도 온천지 얼음 땅 하늘에 그 누가 있어 희디흰 하늘 말씀 새기고 있는가 눈부신 백지여, 하늘의 불립문자여
이혜수 시인 / 이슬 만다라
허공에 기대어 흐느끼는 혼의 울음
한 점 이슬이다가 햇살 그리움에 온몸을 던진다
이혜수 시인 / 존재하는 것들의 영혼은 빛이 된다
어둠 속에서 무심코 스위치를 누르니 어둠의 씨앗들이 꽃을 피운다 주변이 비로소 환하게 밝아진다 전등을 가만 들여다보니 빛 꽃들이 허공 중에 꽃을 만든다 먼 하늘 바라보니 어둠 속에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이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영혼은 빛이 된다
이혜수 시인 / 태양의 딸
1 나는 태양의 딸이다 그가 주신 뜨거운 불기둥은 광야를 달리는 불의 혼이었다
어느 날, 멍울처럼 다가온 어둠과의 치명적 사랑은 단숨에 붉은 노을을 끌어안고 달음질쳐 가고
매일 밤 굶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비릿한 빵과 나의 당당함을 바꾸며 치졸함으로 채워나갔다
2 당신을 향하는 길은 좁아만 가고 허름한 길모퉁이 환희에 찬 날들은 가엾게 시들어간다
태양이신 나의 아버지여! 당신이 태초에 주셨던 빛의 칼로 어둠의 절망을 단숨에 베어 버리고 싶습니다
나 이제 옛것을 버리고 빛의 혼으로 솟아오르리
3 당신의 지칠 줄 모르는 붉은 피 뜨거운 목마름, 다시 용솟음치는 날
나, 당당히 걸어가리 태양을 향해
이혜수 시인 / 삶이란
한 찰라 후드득 쏟아져 내리는 여름날 소낙비
튕겨 오르는 물방울들을 붙잡으려는 희열의 몸부림 뼈아픈 윤회
이혜수 시인 / 환생 -죽은 나무에 버섯
직립으로 묵언 수행한 고승 열반에 들자 그 자리에 사리꽃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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