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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혜수 시인 / 바람이여, 꿈이여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11.
이혜수 시인 / 바람이여, 꿈이여

이혜수 시인 / 바람이여, 꿈이여

 

 

그대 닿는 길목에 피어나는

꿈결바람이고 싶다

 

그대 입술 촉촉이 적셔주는

진한 꽃바람이고 싶다

 

내생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대 가슴에 싱그럽게 불어갈 바람이여

 

아, 멈출 수 없다

붉게 타오르는 영혼의 떨림

 

빛나는 황금 깃털처럼

그대에게 머물고 싶은 바람이여

 

 


 

 

이혜수 시인 / 백일홍

 

 

백일동안의 치명적 사랑

 

꽃구렁

산하늘이

꽃그늘에 무너진다

 

핏빛 그리움

그대 사는 남쪽,

하늘심장에 혼불로 타오른다

 

 


 

 

이혜수 시인 / 하늘 불립문자(不立文子)

 

 

이 한밤 누가 늘어뜨려 놓는 검은 화선지냐

하염없이 송이송이 내려오며 한 땀 한 땀 지상에

새겨놓는 저 무수한 하늘의 불립문자들(不立文子)

 

끝내 화선지 허공에 새겨놓지 못한 말씀들은

땅으로 내려오면 담벼락 넝쿨나무에

길바닥 발자국에 옥상에, 문지방에

촘촘히 희디흰 상형문자들 새겨 놓는구나

 

그러고도 차마 하늘에 다 새기지 못한 사연이련가

새벽에야 마음 문 열고 세상을 빠끔히 내다보니

아, 저리도 온천지 얼음 땅 하늘에

그 누가 있어 희디흰 하늘 말씀 새기고 있는가

눈부신 백지여, 하늘의 불립문자여

 

 


 

 

이혜수 시인 / 이슬 만다라

 

 

허공에 기대어

흐느끼는 혼의 울음

 

한 점 이슬이다가

햇살 그리움에

온몸을 던진다

 

 


 

 

이혜수 시인 / 존재하는 것들의 영혼은 빛이 된다

 

 

어둠 속에서 무심코 스위치를 누르니

어둠의 씨앗들이 꽃을 피운다

주변이 비로소 환하게 밝아진다

전등을 가만 들여다보니

빛 꽃들이 허공 중에 꽃을 만든다

먼 하늘 바라보니 어둠 속에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이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영혼은 빛이 된다

 

 


 

 

이혜수 시인 / 태양의 딸

 

 

1

나는 태양의 딸이다

그가 주신 뜨거운 불기둥은

광야를 달리는 불의 혼이었다

 

어느 날, 멍울처럼 다가온

어둠과의 치명적 사랑은

단숨에 붉은 노을을 끌어안고 달음질쳐 가고

 

매일 밤 굶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비릿한 빵과 나의 당당함을 바꾸며

치졸함으로 채워나갔다

 

2

당신을 향하는 길은 좁아만 가고

허름한 길모퉁이 환희에 찬 날들은

가엾게 시들어간다

 

태양이신 나의 아버지여!

당신이 태초에 주셨던 빛의 칼로

어둠의 절망을 단숨에 베어 버리고 싶습니다

 

나 이제 옛것을 버리고 빛의 혼으로 솟아오르리

 

3

당신의 지칠 줄 모르는 붉은 피

뜨거운 목마름, 다시 용솟음치는 날

 

나, 당당히 걸어가리

태양을 향해

 

 


 

 

이혜수 시인 / 삶이란

 

 

한 찰라 후드득

쏟아져 내리는 여름날

소낙비

 

튕겨 오르는 물방울들을

붙잡으려는 희열의 몸부림

뼈아픈 윤회

 

 


 

 

이혜수 시인 / 환생

-죽은 나무에 버섯

 

 

직립으로

묵언 수행한 고승

열반에 들자

그 자리에 사리꽃 피었다

 

 


 

이혜수 시인

전남 여수 출생. 본명: 박세화. 대전 보건의료대학원 미술심리치료학과 석사졸업. 2012년 《시와 시학》 신인추천작품상을 통해 등단. 시집 『자기 일찍 들어올거지』 『널 닮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