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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수천 시인 / 못에 대하여 외 10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12.
윤수천 시인 / 못에 대하여

윤수천 시인 / 못에 대하여

 

 

벽에 못을 치다 보면

고분고분 잘 들어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들어가다 말고 슬며시 몸을 비트는 녀석도 있어

 

젊었을 적엔 그런 녀석을 보면

저 바보 좀 보게, 하고 놀렸지만

나이를 먹은 뒤론 그러지 않아

 

남의 살을 헤집고 들어가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저랬을까 싶거든.

 

 


 

 

윤수천 시인 /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팔달산 돌아 내려오다가

녹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시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사랑을 생각한다

 

우리는 참 행복했구나

새들처럼 포근했구나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따뜻했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한다

 

 


 

 

윤수천 시인 /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손 잡는다고

넘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손 내미는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응원한다고 힘든 삶이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힘내라는 말

잘 한다는 말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일으켜준다고

상처가 아무는 건 아니지만

흙 털어주는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물 모자란다고 당장

숨 넘어가는 건 아니지만

생명수를 건네주는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혼자 간다고

다 길 잃는 건 아니지만

기다려준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말 한마디 안 한다고

우울해지는 건 아니지만

말 건네준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이름도 모르는 네가

나이도 모르는 네가

친구 하나 없는 내게

 

오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고맙다.

 

 


 

 

윤수천 시인 / 등불

 

 

너도 하나의

등불이야

네가 가는 길마다

세상이

환해지기를!

 

 


 

 

윤수천 시인 / 먼 곳, 먼 사람

 

 

먼 곳은 나를 설레게 한다

먼 하늘

먼 지평선

먼 바다

 

먼 사람은 나를 그립게 한다

먼 이름

먼 얼굴

먼 입술.

 

 


 

 

윤수천 시인 / 소

 

 

저녁놀 등에 지고 집으로 갑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힘이야 좀 들었지만

 

우리 주인님의 저 콧노래 소리 좀 들어보셔요.

 

 


 

 

윤수천 시인 / 청바지

 

 

젊음은 참 좋아

 

아무 델 가도 좋고

 

아무 델 앉아도 좋아

 

나이까지 돌려주니 더더욱 좋아

 

 


 

 

윤수천 시인 / 메아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메아리가 있다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들을 수 있는.

 

 


 

 

윤수천 시인 / 여보

 

 

여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알아?

 

왜 생겼는데?

 

딴 데 보지 말고

 

여기 보라는 거야.

 

 


 

 

윤수천 시인 / 엄마

 

 

세상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

 

엄마

 

저세상 갈 때 마지막 하고 가는 말

 

엄마.

 

 


 

 

윤수천 시인 / 가로등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 있니?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 본 적 있니?

 

난 평생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어

 

그가 돌아온다고 약속했거든.

 

 


 

윤수천 시인

1942년 충북 영동 출생. 경기도 안성에서 자람. 국학대학 2년 수료. 1974년 소년중앙문학상 동화 당선.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동시집 '아기넝쿨', '겨울 숲', 동화책 '꺼벙이 억수', '인사 잘하고 웃기 잘하는 집', '나쁜 엄머', 시집 '쓸쓸할수록 화려하게', '빈 주머니는 따뜻하다', 발간.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동화문학상 수상. 초등학교 4-1 국어활동 교과서에 동화 <할아버지와 보청기>수록. 현재 수원문학 고문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