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수천 시인 / 못에 대하여
벽에 못을 치다 보면 고분고분 잘 들어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들어가다 말고 슬며시 몸을 비트는 녀석도 있어
젊었을 적엔 그런 녀석을 보면 저 바보 좀 보게, 하고 놀렸지만 나이를 먹은 뒤론 그러지 않아
남의 살을 헤집고 들어가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저랬을까 싶거든.
윤수천 시인 /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팔달산 돌아 내려오다가 녹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시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사랑을 생각한다
우리는 참 행복했구나 새들처럼 포근했구나
녹차를 마시며 그대를 생각한다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따뜻했던 우리의 사랑을 생각한다
윤수천 시인 /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손 잡는다고 넘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손 내미는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응원한다고 힘든 삶이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힘내라는 말 잘 한다는 말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일으켜준다고 상처가 아무는 건 아니지만 흙 털어주는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물 모자란다고 당장 숨 넘어가는 건 아니지만 생명수를 건네주는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혼자 간다고 다 길 잃는 건 아니지만 기다려준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말 한마디 안 한다고 우울해지는 건 아니지만 말 건네준 네가 고맙다 넌 오늘 내 친구였다.
이름도 모르는 네가 나이도 모르는 네가 친구 하나 없는 내게
오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고맙다.
윤수천 시인 / 등불
너도 하나의 등불이야 네가 가는 길마다 세상이 환해지기를!
윤수천 시인 / 먼 곳, 먼 사람
먼 곳은 나를 설레게 한다 먼 하늘 먼 지평선 먼 바다
먼 사람은 나를 그립게 한다 먼 이름 먼 얼굴 먼 입술.
윤수천 시인 / 소
저녁놀 등에 지고 집으로 갑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힘이야 좀 들었지만
우리 주인님의 저 콧노래 소리 좀 들어보셔요.
윤수천 시인 / 청바지
젊음은 참 좋아
아무 델 가도 좋고
아무 델 앉아도 좋아
나이까지 돌려주니 더더욱 좋아
윤수천 시인 / 메아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메아리가 있다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들을 수 있는.
윤수천 시인 / 여보
여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알아?
왜 생겼는데?
딴 데 보지 말고
여기 보라는 거야.
윤수천 시인 / 엄마
세상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
엄마
저세상 갈 때 마지막 하고 가는 말
엄마.
윤수천 시인 / 가로등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 있니?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 본 적 있니?
난 평생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어
그가 돌아온다고 약속했거든.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함동수 시인 / 물의 환상도 외 6편 (0) | 2026.01.12 |
|---|---|
| 표규현 시인 / 떠오르는 혀 외 6편 (0) | 2026.01.12 |
| 연명지 시인 / 태극기를 품다 외 6편 (0) | 2026.01.12 |
| 임곤택 시인 / 다짐하는 아침 외 6편 (0) | 2026.01.12 |
| 희음 시인(문희정) / 앉아 있는 사람 외 6편 (0) | 2026.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