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표규현 시인 / 떠오르는 혀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12.
표규현 시인 / 떠오르는 혀

표규현 시인 / 떠오르는 혀

 

 

 혀 밑에 혀가 있네 숨죽이고 있다가 못마땅한 것이 있으면 치받아 올리네 소문을 내고 뒤에서 웃고 물고 뜯으며 서로 침을 뱉고 물가는 오르는데 할 일은 없고 주머니에는 천 원 한 장뿐이지 함께 갈 사람이 보폭을 맞추지 않고 앞서가네 저만큼 뒤뚱거리며 아버지의 지팡이는 따라오시고 날은 화창한데 만날 사람은 없지 사랑도 없이 살아가니 피는 식어가지 고향은 멀어지고 취객의 아내는 문을 닫아걸었네 그녀의 손길은 더 이상 뺨을 쓰다듬지 않고 반딧불 같던 웃음도 멀어지네 길게 뻗은 철길은 한 점으로 사라지고 한숨은 다리 아래로 떨어지네 아무도 염려하지 않는 세상을 사람들은 넓다고들 하지 떨어진 동백은 아직도 시들지 못하는데 원치 않아도 아침은 오고 지금 있는 곳을 모르겠고 있어야 할 곳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네 방바닥에 햇살은 무늬를 새기고 거울이 깨지니 얼굴이 아프고 술병을 따면서 서로의 안부는 묻지 않네 역에서 역으로 돌아다니고 낮에 만난 노인이 밤에 얼굴을 들어 나를 보고 있네

 

 


 

 

표규현 시인 / 오픈

 

 

 스푼으로 오픈하고 맥주를 마신다

 

 오픈 도어가 안되는 집에 살고 있다 오픈이 안될 때 정신은 소스라친다 속내를 함부로 보 일 일이 아니다 누구는 쉽게 오픈한다지만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장을 오픈할 때 새 들이 좋아할까 실례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한 번 열면 닫아야 한다 소문도 처리해야 하 고

 

 스푼으로 오픈하고 맥주를 마신다

 

 입을 오픈하는 데는 스푼이 제격이다 그러나 작은 입에 큰 스푼은 맞지 않는다 하마에게 티스푼이라니 웃음이 나온다 땅을 오픈하는 스푼도 있다니 그것은 놀랍다 그 속에 들어 가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식당을 오픈할 때는 스푼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바로 닫아버리는 곳이 많다고 한다 입들을 오픈시키거나 알아서 오픈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다고

 

 스푼으로 오픈하고 맥주를 마신다

 

 화장실에서 우리는 지퍼만 오픈하면 되는데 그녀들은 엉덩이까지 오픈해야 한다니 하 고 생각하네 오픈이 무슨 큰 죄라고 남의 오픈까지 참견하나 그래도 오픈은 신경 쓰인다 허리 아래 사정을 남들이 알 수는 없다 항문이 오픈 안되면 큰 일 하수도가 오픈이 안되 기도 했다 구정물이 마구 올라오는데 골목 흙탕물은 문지방을 넘고 숨은 차오르고 흥분 하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한다

 

 


 

 

표규현 시인 / 껌 뱉기

 

 

혀끝의 반동으로 튀어나간 것이

풀잎의 이마에 적중한다

가만히 올라앉아 머쓱하다

풀잎은 머뭇머뭇 흔들거리다

이내 잠잠해진다

 

쪽쪽 단맛을 볼 때와

뻑뻑히 물리는 느낌의 때가

구분되어 질 때

입 밖으로 툭 튀어 날아가

포물선을 그리며 따라 간다

 

얼굴은 떠오르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

고요하기만 하고

슬쩍 보면서 지나가는 것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난 것

붙어 지낸 적도 없던 것

한 음절 퉤 하는 소리와 더불어 간다

소문도 없이 사라진다

 

 


 

 

표규현 시인 / 우포牛浦

 

 

하늘 잡아먹은 거울

거꾸로 선 나무들

혓바닥을 내밀고 뻘을 밀고 가는 쪽배

물 속 제 그림자를 본다

 

소를 빠뜨렸다 실수로 아니면 큰 비가 왔을지도

깊은 안개를 마시며 쟁기를 끌고 가는 소의 발굽이 깊다

납작한 사람들이 가라앉은 마을을 갈고 있다

뿌옇게 콧김이 물위에 번진다

 

끈적끈적 배를 밀면 언제나 뭍에 오를까요

옥수숫대 씹듯이 갈대밭을 바라보는 물에 갇힌 눈망울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며 빛을 뿌려도 보이지 않는다

매달린 것들은 엉덩이를 잡아끌고

 

뱃속으로 들어오는 습기

피거품 끓어 오른다

피떡이 뭉쳐져서

벌겋게 부들이 솟고

 

판바우와 바우덕이가 마주 보고 울면

연잎에 혓바늘처럼 누렇게 가시가 돋고

잉어가 울어서

왕버들이 머리를 풀었다지

 

울음 소리 들린다

검은 침 끈끈하게 고인다

소심줄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배로 밀고서라도 나가고 싶다

잔등에 갈잎 한 장 떨어진다

 

 


 

 

표규현 시인 / 타워는 그늘을 드리우고

 

 

 롯데타워의 그늘에 먼지 하나 구르는데 타워는 내려다보고 먼지는 올려다보지 않는다 날리는 먼지 서로 엉기고 흩어지고 그래그래 먼지의 사랑 열풍에도 얼음 바람에도 엉기는 사랑

 

 자꾸만 늘어나는 먼지 몸의 부스러기들 식량의 잔재들 사라진 개미들 물고 간다 타워는 올라가고 먼지는 내려오는데 개미에게 먹일 먼지 조각들 그늘에 밟히고 호수에 떨어진 그늘에는 오리 일곱 마리 먼지처럼 떠 있다

 

 오리는 먹이를 다투지 않고 자맥질에 몰두하는데 타워는 머리를 곧추세우고 발사체가 되어 허공을 노리고 먼지들 날린다 서로 끌어안고 간다 몸들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먹이는데 타워는 그늘로 오리를 덮친다

 

 먼지는 아직도 구르고 오리는 호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바퀴들 구르고 먼지들 일어 나고 마르고 젖고 마르고 젖고 새끼를 치고 하루가 삼년 같다더니 먼지는 바짓단과 치마자락에 붙어가고 타워는 구름을 뚫고 그늘을 드리우더니 호수에 잠긴다

 

 


 

 

표규현 시인 / 흰머리

 

 

해가 눈 덮인 산마루에 솟아 오르면

어머니는 이불 홑청 시치시네

빨랫줄에 기저귀 부숭부숭 마르고

뒤집히고 젖혀지며 바람을 들이켜네

 

아침 안개 속에 섰던 사람이

저녁 바람을 맞고 섰네

강 건너에서 손수건 흔드네

하얀 나비 날아드네

 

뜨개질 실타래같고

눈사람 머리 같기도 하고

배냇머리 어느새 성깃성깃 희었네

손주 장난감으로 딱 좋겠네

 

지금 나 말없다 하지 말게

말은 할 일 다 마치고 할 것

연탄재 한 때는 뜨거웠다네

불꽃은 하얗게 꽃송이 같았고

파르르 떠는 모습 그럴 듯 하였네

 

장기 알 두드리는 공원 벤치

아직 내게는 한 수가 남았다고

민달팽이 촉수 하늘을 향해 섰네

해 뜨면 나왔다가

석양에 돌아가는

멧새였지만 쉬파리 같이 되었으나

 

 


 

 

표규현 시인 / 을지로 골뱅이

 

 

 골뱅이를 둥글게 말아가며 혓바닥에 굴리다가 어금니 밑으로 자리를 옮겨 씹으면 그 들 큰하고 시큼한 즙은 사정없이 흘러나와서 그 맛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그도 그럴 것이 바 다 저 조용하고 깊은 바닥을 우아하게 미끄러질 듯 걷던 그 자태도 고요히 쉬던 숨결도 양철관 속에 봉인된 지 오래되었으니 목숨이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이미 애도할래 야 가망은 없다만 비릿하게 남아 있는 바닷속 기억을 혀로만 느낄 수 밖에 도대체 그 맛 이라는 것도 양념 범벅이긴 하지만 길고 긴 시간을 어둠 속에서 지냈고 이제 조류 속에 흔들리다 집을 떠나 튼튼한 양철집으로 이주하였으니 옛적 이야기는 먼지 구르는 선반 에 묻어 두어라 윤회나 부활 같은 것도 다 죽은 자식 불알 잡는 이야기다

 

 


 

표규현 시인

1955년 경기도 남양주시 출생. 199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석사 취득. 2017년 계간 《창작 21》 겨울호 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