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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자 시인 / 월차를 내다
때로는 태양도 쉬고싶을 때가 있는지 오늘은 일찌감치 월차 내어 구름속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다
나도 이따끔씩 내 생 월차 내어 주유천하하고 싶을 때 있다
신구자 시인 / 소멸
단풍 물든 사람들 계룡산 단풍 함께 물들러 갔다 단풍 재촉하는 것 서러웠던가 비 내려 도중에서 마음 접은 채 머지않아 계곡 물소리도 춥겠다 다독이며 내려오다 계룡산 축제 한마당 "봄날은 간다" 춤 보았다 환희의 페달 밟던 한 무더기의 꽃송이들, 흰 날개옷 나비처럼 生을 피워올리며 스러지듯 스러지듯 풍경 밖으로 지워져 갔다 찬란했던 저 봄날 같던
신구자 시인 /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떡잎 같은 일상의 비늘들 후두둑후두둑 털어버리고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 때가 있지 두 눈 반짝이며 줄레줄레 따라 나서는 강물이든, 얼기설기 인연의 씨줄처럼 얽혀있는 산이든, 잡초밭이든, 연꽃밭이든, 꽁무니에 매달고 지나온 수많은 길들을 뜯어 가슴팍에 품고 너에게로 열려 있는 이끼낀 세월 한 알씩 한 알씩 부화시키며 그것이 끝내 닿을 수 없는 벼랑의 끝에서 추락한다 해도 덜컹거리는 삼등 열차를 타고 흔들흔들 떠나고 싶을 때 있지
신구자 시인 / 조화調和
비틀비틀 갈지 자 걸음 걷는 뒷모습 보여주는 세상 서로 부딪히지 않고 굴러가는 이치 보려거던 봉황산 기슭 결가부좌한 채禪定에 든 부석사 석축 가서 보거라 잘 여문 바람결에 고개 끄덕이는 나뭇잎들처럼 절로 고개 끄덕여지리니 큰 수레덩이만한 것에서 갓 태어난 아가의 주먹만한 것들이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 모습처럼 둥것 것 모난 것 길죽한 것 넙적한 것들 위에서 아래서 그리고 옆에서 희망과 절망,적막까지도 서로 받치고 끌어안은 채 푸른 이끼 낀 세월 흐트러짐 없는 자태 만날 수 있으리니
신구자 시인 / 절정은 다 있다
응달의 목련 이제 겨우 눈뜨기 시작했는데 양달의 목련 고개 빳빳이 들고 서릿발 고고함 공작깃처럼 펼쳐 보이더니 어느새 고개 떨구었네
세상의 모든 만물들 어느것이나 인연따라 절정은 다 있는 법 다만 높고 낮고, 앞서거니뒤서거니 할 뿐이다
-시집 <낫골가가는길>에서
신구자 시인 / 중앙로에서
오늘도 중앙로에서 성긴 바구니에 꿈을 줍는다
가을날 에메랄드 눈처럼 반짝이던 영혼의 조각들과
언제나 통곡같은 절절한 목마름으로 엉겨피던 불꽃 사르비아
지금은 썰물처럼 지워버린 황량한 이 거리에서 영혼이 은비늘 같이 퍼덕이던 곳은 어디쯤 일까?
낮선 대문 기웃대는 지천명의 아낙이여
오늘도 중앙로에서 성긴 바구니에 꿈을 줍는다 빛을 줍는다 물러선 세월의 잔해를 줍는다
신구자 시인 / 수계 받는 은행나무
송림사 해우소 앞 어둠 닦아내며 묵언수행 하고 있던 은행나무 온종일 내리는 비에 온몸 닦고 삼귀의례 합장하며 살며시 땅 위로 몸 나투어 수계 받던 노란 수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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