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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림 시인 / 먼지 속의 프로이트
그는 늘 말한다 정신과 의사 같은 말, 마음을 비우라는 말 당신 곁엔 내가 없고 내 곁엔 당신이 없다는 말 혁명이니 희망이란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
말이란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면 나이가 불쌍해진다 상처가 된 말들은 예의가 없다 백로(白露)가 마신 화주(火酒) 같다
그는 그런 빛 같은 말을 먼지처럼 사는 나에게 마구 쏜다
아아 먼지 속의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분석받고 있는 사람을 여자로 가정하기 좋아했다지 나는 너에게, 빛에게 모든 의무에 함량된 내 피에게, 프로이트에게 분석받고 있다 인연을 끊지 못하여 내부, 내부를 먼지로 만들어가는 여자
우리가 사랑에 관해서 말할 때 정말로 그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가?*
*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역사」에서
-시집 『평화의 속도』, 시와반시, 2003.
고희림 시인 / 서시
머리를 조금씩 돌려 회전목마가 될 것 생각을 꺼내 정수리 위에 올라탈 것 생각과 머리가 어우러지고 맞물리는 그 지점을 살펴볼 것 그리고 조용히 빠져나올 것
생각에 낚인 나를 저만치 두고 사모하여 안타깝게 바라보는 어떤 도착에 이르면
하늘이 열릴 듯 다시 닫히다 그리고 막막해지는 커다란 슬픔이라
애초에 준비도 없이 길을 잘못 들어 허우적대며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그렇게 조금씩 전진했다는 것에 대하여
고희림 시인 / 가을의 하늘이 또 저만큼 높아졌구나
번데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있다 약간 언덕의 흉내를 내고 있는 길, 길가의 벤치 백양나무군 전화 부스 그리고 짤막한 숲과 이런 곳을 찾은 사람들의 유자(有自)한 오늘
자판기에서 커피가 아닌 동전이 오히려 굴러 떨어진다 오래된 자판기 저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절이 왔어 아 사는 게 죄라고 탄식 일삼는 동안 가을의 하늘은 또 저만큼 높아졌구나
고희림 시인 / 지하철에서
한때 난 희망을 인간의 지배를 벗은 깨끗한 죽음 그 후로 읽었다
길을 나설 때마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올 희망이란 새로운 희망이란 세상 가득한 절창처럼 최후의 노예처럼 끝없이 기다리며 정월에도 오뉴월 개처럼 아니 지하철에서조차 침을 흘린다
옆자리 여사는 눈을 내리 깔고 있다 팔짱을 끼고 좌우를 두리번 거리는 성냥개비같은 얼굴의 맞은편 사내 상의를 추스르며 不歸의 말을 내뱉는 남편을 외등처럼 올려다보는 저 젊은 만삭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 커튼을 치고 이불 속에 제왕처럼 누워 입 속 제 사탕 한 알 빨아먹듯 액정을 쩌억쩍 긋는 사람들 달면 삼키듯 쓰면 뱉듯 지하인의 목 조으는듯한 공명을 내며 열리고 닫힐 때마다 막차를 탄 기분이다
이런 사람들, 희망의 정신병자 라 생각한 지하를 벗어나지 못한 난장이들은 불가능하게 매일 살아나 '새로운 희망 운운' 을 붙인 채 개꼬리처럼 흔들거리며 출발을 거듭하는 지하철 꽁무니를 보내고 국가가 보낸 다음 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고희림 시인 / 밤 늦게 헤어진 너는 집에 잘 들어 갔겠지
향기도 없는 히말라야시다잎이 애물로 자리한 도시, 가로수 끝에 매달린 뜬 구름같은 소문을 따라가면 제 혀를 맘껏 늘인 구호가 혈통 오래된 땅 밑, 너무 깊게 뻗어버린 어두운 줄을 간신히 끊어 들어 올릴 기셉니다
동장군이 휘몰아치는 거리에 서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원 여러분?을 만나고 기다리며 ‘보세요 우리가 남입니까!’ 온갗 풍을 떨며 자신 구호에 박차를 가할 땐 우리의 소원이 뭔지 잃어버렸습니다
2012년 겨울이었습니다 고향이 미우니까 엄마도 미운 기억처럼 눈발은 날리고 각자는 각자의 생각 안과 밖을 넘나들며 만원씩 제 밥값을 내며 따스한 용서처럼 부벼대며 밤늦게까지 앉아 서로의 약속을 주고 받았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살아야 할 천개의 얼굴을 가진 거리 만개의 희망인 척 하던 우리의 정부같은 다가올 정부를 위해 안녕! 하며 끝끝내 돌아올듯 어둔 골목을 돌아 사라졌습니다
밤 늦게 헤어진 너는 집에 잘 들어 갔겠지?
고희림 시인 / 층간소음
윗 층 사내가 변기에 오줌을 뿌리고 물을 내린다 소리에 깬 나는 이제 화도 나지 않는다 어젯밤에는 심지어 한 시간 가까이나 침대를 덜썩이며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좀 더 가까이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부부 혹은 연인은 이미 나의 타자화의 그물인 것이다 밉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고 내 생활의 동심원에서 뛰어노는 영양 한 쌍 같기도 하고 나도 저랬을 순간에 저의 나에 대한 생각을 더듬어 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피차 한 배를 타고 끌려가는 어지러운 국가의 거수꾼 이기도 한 주제를 생각했다
아 내일 새벽에도 저 남자의 오줌소리와 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침대를 뒤흔들듯 여자의 음부에 존재를 과시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위선자다 아 들어야 한다, 괴롭다가 아니라 우리는 다 같은 인류니까 이웃이니까 나도 너와 다르지 않으니까 에 또 뭐가 있을까 나도 하고 싶으니까 그만 좀 해라 외치고 싶기도 하다
남자랑 같이 사는 것도 힘든데 윗층 남자와도 같이 살아야 하다니 이 층간소음이 날로 번창해서 나는 나의 윗층남자와 사랑을 나누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윗층같은 남자를 싫어할 뿐더러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남자를 좋아해서 현실은 푸른 나무인데 잿빛 이론*을 가진 남자를 좋아해서 꿈으로 임신한 아이를 제 아이로 여기는 남자를 좋아해서 나의 층에서 이렇듯 관음하고만 있어야 하는 나는 대체 왜 여기에 계속 사는 것일까
*괴테가 쓰고 레닌이 인용 한 말
고희림 시인 / 이 모오든 감옥
어젠 10월유족회 정기총회 준비를 위한 모임을 이조명가 사무실에서 했었죠 10월유족과 이용수할머니와 지하철 세월호 유족까지 모두모두 손 잡고 유족의 나라 굿판을 벌리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물론 춤 추는 박정희샘이 그들 모두의 손을 서로 잡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요 마침 채영희 회장님 생신이라 노래도 부르고 케익도 자르구요 특별법 제정 서명을 열렬히 하자며 마음을 모았어요 오늘은 신매광장 아이쿱 생협 주최로 7시반에 다이빙 벨을 상영한다고 해요 지식과 세상에는 김상봉교수의 호모에티쿠스 에 대한 강연이 있었죠 본색 소사이어티 이시훈은 왔다가 돌아갔다고 하네요 숨쉬는 밥상 협동조합 대표 송광근 시인도 오늘 10월문학회 번개를 때렸고 방천시장 카페 플로체 한지영 박진명씨도 열심히 추억의 도시락을 만들구요 서부시장 콩국집에선 박정희샘도 아름다운 경영에 종사하고 있구요 교육공간 와에선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 대해 공부를 한다구요 노동사화과학 연구소의 보육교사 김영숙씨는 아무도 우리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도 말 좀 하고 살자고 이교희 노동당 친구가 페북에 알렸어요 현대사상연구소 홍승룡선생님은 문학과 혁명 이란 트로츠키의 발제를 하신다구요 우리 몇몇 중 맋스 연구소를 차리자 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뉴스 민 기자 천용길이 3개월 육아휴직을 한다네요 같이 공부할 시간이 좀 늘었어요 경대 북문 어디에선 김사열 총장님이 왜 총장이 못되는가 를 가지고 경대 민동들이 열나 모여서들 있구요 만경관 옆 오오극장에선 55석의 의자로 독립전용 영화관을 개관하여 그 첫 날 블랙 엔 화이트 란 독립영화를 상영했어요 미생의 이성민씨 데븨작이더군요 그 옆 ymca가 5월15일 둥지를 틀어야 할 빌딩엔 정태경화백의 그림을 전시할려고 준비 중입니다 덕분에 10월문학회 시화전도 함께 열까 생각중이고요 아휴 내일은 민예총 총회가 오오극장에서 열리네요 밤 12시반엔 팽목항 출발 버스가 동아쇼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구요 모래는 해인 스님이 몽골의 페미니스트 왕비들이란 북 콘서트를 하는데 그 전에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음 주엔 설날이 있네요 등산도 가고 싶고 책도 읽어야 하지만 장 보러 가야 되요 법주도 사야 되고 표고버섯 사과 부추 미나리 달걀 두부 밀가루 돼지고기 문어 감자를 사야되요 어디 그것 뿐이겠어요 제삿장을 보려면 메모지에 적어서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하는걸요... 드디어 한 해를 넘기는군요 56살이란 끔찍한 나이를 기억해야 해요 아들 과 딸 둘 다 결혼도 안했구요 직장도 없어요 먹고 놀아요 논다기보다 자유의지로 자아실현에 돌입했다고 주장들 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친정엄마가 전화를 안받아요 나도 전화를 잘 안하지만 그만큼 섭섭해 하시고 그만큼 외로운신 분이죠 결혼 안한 여동생과 같이 살아요 두여자가 함께 살아서 든든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요 같이 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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