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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선 시인 / 문경새재에서
문경새재는 완만한데 누굴 만나러 가길래 계곡물은 저리도 급하게 달릴까요 가다가 들녘을 만나면 씨앗도 뿌려보고 산길을 만나면 구절초도 피워가면서 바람소리 새소리에 쉬어도 보고 넘어진 아이 보면 일으켜 세워도 주면서 우린 그렇게 흐르면 안 될까요? 흐르지도 넘치지도 못해서 저리도 제 가슴 바위로 치며 회오의 몸부림치는 보셔요 애오라지 급하게만 달려왔던 본시 계곡물인 저 바다를
문인선 시인 / 무엇으로 메울까 구멍 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낮에는 시린 바람이 들락거리고 밤에는 독주로 채우는 시린 구멍을 가진 서러운 이여 뚜껑 없는 맨홀처럼 뻥 뚫린 동굴 무슨 꽃잎으로 속절없이 헐어진 그 성터를 메울 수 있을까 키워준 강아지도 속이 타는지 방도 없어 제 꼬리만 흔드네 모난 곳 없는 저 만월이면 어떨까 둥지로 날아가는 허공의 새에게 물어보네 산빛 하나 물빛 하나 절간의 풍경소리 성당의 기도 소리 살살 녹여서 도공의 손길로 어루만져 메워 볼까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 모두 불러 모아 가슴 적시는 그 아름다운 선율로 메워 볼까 분홍빛 그 아련한 첫사랑의 채색이면 어떨까 아 내가 새살 돋게 하는 봄 햇살이 될 수만 있다면 봄바람과 함께 그대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문인선 시인 / 나무의 이타 정신
겨울이 온다고 사람들은 솜 옷을 꺼내 입었다 단풍이 지기 전에 보아야 한다고 숲으로 달린다 단풍에게 생색이라도 내듯이
여름엔 태양을 가려 땅의 더위를 식혀 주던 나무 서릿발 추위를 막아주자고 땅의 이불이 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생각 없이 떠들다가 간다 빛깔이 붉느니 곱느니 낙엽 위에 앉아도 보고 뒹굴어도 보고 떠들다가간다
낙엽도 밟히면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밟히는 낙엽에 아랑곳 않고 여름날 자신들이 그 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혔던 것도 잊은 채 떠들다가 간다
문인선 시인 / 부활
인간 세상 그리웠을까 머나먼 수궁에서 온 최초의 고결함 신성함이 몸에 밴 너는 깊은 바다를 닮은 푸르고 둥근 잎에 사뿐이 발을 디뎌 긴 목 뽑아 올렸다 지나던 회색 구름의 수런거림 소년은 눈이 빛났다. 뚝! 햇살도 번개에 베이고 분수처럼 솟구치는 하얀 절규 이차돈의 순교가 저랬을까 소녀는 잽싸게 연민으로 감싸 안았다 흔들리며 어디론가 가는 동안도 생의 의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곧추세운 영혼 밤을 새는 인고 ....... ! 드디어 활짝 피어난 홍련 부활이다
문인선 시인 / 이젠 뛰어 오르겠다
바다에는 계곡물의 추억이 있다 넓은 세상을 꿈꾸던 시절 높은 산에서 절벽을 뛰어내리던 오늘은 내일을 꿈꾸지만 어제가 그리운 법 폭포의 추억은 잔잔한 수평선이 싫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뛰어내릴 곳이 없는 바다 뛰어 오르고 싶다 긴 강을 달려왔던 힘으로 수평선을 달려와 바위벽을 치며 뛰어 올라본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절벽을 뛰어내리던 짜릿했던 그 순간들 이제 파도로 뛰어오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문인선 시인 / 풍경 2
산 넘어 바람은 산사의 적막을 알았나보다 슬그머니 찾아와 덩그렁 댕그렁 적막을 노크한다 놀란 동박새 파르르 날개를 펼치고 오수를 즐기던 하늘은 뭉게뭉게 서둘러 목화밭을 가꾼다 긴 계곡을 거슬러 온 사람은 무슨 사연 있기에 부처님께 저리도 매달리는지 보다 못한 풍경이 바람을 붙들고 운다 덩덩 덩그렁 그렁그렁
문인선 시인 / 너는 나의
빙산을 녹이는 햇살로 늘 음악으로 왔지 그러다가 영화와 명언 속에 숨어서 작은 별빛으로 오는 날도 있었지 은근히 귀를 간질이는 연둣빛 빗소리로 오더니 가슴 한가득 오로라 빛으로 아늑한 푸른 초원 속에 나를 데려갔어 날개가 돋는 줄 알았어 분홍빛 구름위에 나를 올려놓더군 머리카락 기분 좋게 날리는 코발트빛 실바람으로 백색의 꿈을 구듯 신기루가 보였어 이슬방울인 듯 눈물방울인 듯 영롱한 가슴을 열어 들판을 달려도 좋은 일곱 색 무지개로 오기도 하던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이었어 새벽마다 연꽃 같은 설렘으로 맞이한 내 영혼에 스며든 한 아름 순정한 빛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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