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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용숙 시인 / 가시를 말한다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1.
조용숙 시인 / 가시를 말한다

조용숙 시인 / 가시를 말한다

 

 

저녁 식탁 위에 오른 고둥어 한 마리

한 점 떼어 삼키려다 목에 걸린 가시 한 조각

성급히 뱉어내려 켁켁거리는 사이

어느덧 내 몸이 바다 한 가운데에 가 닿는다

살이 발려나가는 순간,

바다의 물고기는

떨어져나가 제 생의 한 조각을 찾아

한 번 더 출렁였을지 모른다

날카로운 가시 가슴에 품고도

저 아닌 다른 것을 찔러본 적 없는 물고기

살이 다 발려지기까지

몸속 가시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가시를 향해

뭔가 찌르고 싶은 깊은 적의를 숨기고 살았을 거라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

몸속에 가시를 품고 사는 고통을

꿈에라도 짐작이나 해 봤을까

어쩜 제 몸에 박힌 가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바다의 몸부림처럼

구름 끼고 날 궂은 날

파도가 그렇게 출렁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詩로 여는 세상 (2008년 봄호)

 

 


 

 

조용숙 시인 / 겸상

 

 

수원역 24시간 편의점에서

좀 이른 저녁을 먹는다

밥상 위에 차려진 저녁 메뉴는

컵라면 하나

나보다 조금 먼저 젓가락을 든

노숙자 옆에서 컵라면 포장을 뜯는다

단단히 뭉친 면발을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대는 그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내 라면에도 뜨거운 물을 붓는다

뜨거운 물에 바로 풀어지는 면발 앞에서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손바닥에 전해지는 컵의 온기로 녹여낸다

세상에 굽신거리기 싫어

거리에서 혼자 밥 먹는 날이 많았을 그와

아무데나 함부로 고개 숙이기 싫어

세상 살아가는 일이 불편한 내가

먹으면서 서로 정이 든다는 가족처럼

어느새 많이 닮아 있다

 

 


 

 

조용숙 시인 / 소정방의 환영幻影이 되살아나다

 

 

역사가 남긴 상처 부소산 그림자로 끌어 덮으며

집착 없이 많은 생명들을 키워온 내 어머니 강

노랑턱멧새의 안식처가 되고

사람들의 식수원과 습지 생물들의 탯줄이 되어주던 어머니

경제라는 팻말을 내건 수술대 위에 팔다리가 묶여 입덧 중이다

 

갈대숲 우거진 은빛 비단 저고리 아래

모래톱으로 꼭꼭 동여맨 젖망울은 퉁퉁하게 부풀어 오르는데

차트를 움켜쥔 돌팔이 의사

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의 비단 치맛자락 함부로 들춰가며

낙태 처방전을 거침없이 써 내려 간다

 

퉁퉁 불은 젖망울에서 찌릿 찌릿 전해지는 슬픔이

굽이치는 급물살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사이

돌팔이 의사의 칼끝을 베어 물고 떨어지는 낙화암의 석양빛이

천오백년 백제 역사의 한이 되어

곰나루 따라 흘러가는 금강의 물줄기를

핏빛으로 물들인다

 

 


 

 

조용숙 시인 / 문단속

 

 

오래 살아야 두 달 산다는 아버지를

노인병원에 모시던 날

보호자는 있을 곳 없으니

이제 그만 다들 돌아가라는 수간호사 말에

한순간도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일 없던

아버지 눈동자가 힘없이 흔들린다

하는 수 없이 엄마까지

입원 수속을 밟고 돌아서는데

어머니 내 귀에 대고 살짝 속삭인다

글쎄 동네 홀아비 김씨가

한밤에 건넛마을 팔순 과부를 겁탈했다는 소문이

동사무소에 파다하단다

니 아버지 먼저 가면 나 무서워서 어떻게 산다냐

대문 없는 집에서도 평생 맘 편히 잘 살았는디

니 아버지 가면 얼마 안 있다 바로 따라가든지

아니면 제일 먼저 대문부터 해 달아야쓰겄다

제삿날 받아 놓은 아버지 곁에

새색시처럼 바싹 달라붙어 있는 칠순 엄마가

처음으로 여자로 보였다

 

- 시집 『 모서리를 접다 』 2013

 

 


 

 

조용숙 시인 / 나이테

 

 

1.

가슴팍이 쩍쩍 갈라진 당산나무를

 

죽을 힘껏 껴안았다

 

나무를 칭칭 감고 있던 비단뱀 한 마리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추운 겨울 내내 얼어붙은 몸속에서 꿈틀거리더니

 

이른 봄만 되면

 

나는, 시퍼런 물을 게워내며 입덧을 한다

 

2.

언제 튀어 오를지 모를 용수철을

제 안에 꾹꾹 눌러 놓느라

썩어 도려낸 가슴 한 쪽에 돌멩이를 채워 넣은

당산 나무도

바람 앞에서는 온몸을 부르르 떤다

 

 


 

 

조용숙 시인 / 여자들

 

 

산부인과 병동 718호실

커튼으로 봉쇄된 다섯 개의 침상

막 엄마를 들어낸 오른쪽 침상에서

새어나온 신음소리가

병실 바닥을 훑고 다닌다

수술 순번을 기다리는

부부의 소곤거림이 귓불을 잡아당긴다

왼편 침상에 멈춰 서는 발자국 소리

관장약 넣었으니까

꾹 참았다 못 참을 때 가세요

바로 가면 안 돼요

배뇨감을 최대한 참고 있을 아내를 위해

살뜰히 모은 소변통을

비우러 가는 남자의 발소리 뒤에

엉덩이에 힘 꽉 주고 참아내는 여자가 있다

반대편 침상에는

수술실로 향하는 아내 손을 꼭 부여잡고

원죄를 고백하는 사내가 있다

두 침상 대각선 구석에

아직 어린 딸

보호자로 앞세우고 들어와

밤새 입술이 바싹바싹 마른 여자가

저 혼자 씩씩하게 수술실로

끌려간다

 

 


 

 

조용숙 시인 / 내 시의 레시피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이런 멘트를 기대하셨다면

다른 식당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즐겨 먹는 요리는

양식 한식 중식 일식 닥치는 대로 먹고

나름 잘 소화를 시키는 편입니다만

남의 요리를 흉내 내는 기술은 없습니다

 

제가 선보일 요리는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의 향과 식감을

최대한 신선하게 살린 요리입니다

처마 밑 고드름이 어금니 사이에 낄 수도 있고

여름에 내린 서리가

복통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손에 둘둘 말아쥔 손수건이 장미꽃으로

두루마리 화장지가 현금 다발로 바뀌는

후~ 불은 입김이 비둘기가 되는 믹싱 기술은

흉내도 못 내는 그냥 토종입니다

풍미와 향을 돋궈주는 톡 쏘는 향신료나

오감을 자극하는 조미료도 쓸 줄 모릅니다

 

자연에서 갓 따온 가정식 요리를 먹고 자랐어도

어디 가서 크게 버릇없다는 소리는 안 들었습니다

그 음식 먹고 크게 앓아누워본 적도 없습니다

 

혹, 집밥 그리우면 언제라도 편히 찾아오세요

 

앞 담장에 여름내 목매고 있던 호박에

봄비에 몰매를 맞고도 햇볕에 반짝 눈뜨고 나온

표고버섯 몇 송이 따 넣은

시골 된장국 한 그릇 대접하겠습니다

 

속에 가시를 품고도 한 번도 누구를 찔러본 적 없는

생선도 한 마리 숯불에 굽고

탄저병에도 끄떡 안 한 풋고추에 푹 삭은 된장

무엇이든 다 품을 수 있는 호박잎 쌈도 올리겠습니다

까짓 아껴둔 씨암탉도 잡아 드리지요 뭐

 

 


 

조용숙 시인

1971년 충남 부여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석사. 공주대 국문학과 박사 과정. 2006년 『詩로 여는 세상』을 통해 등단. 2013년 대전문화재단 문예기금 수혜. 시집 『모서리를 접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