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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진호 시인 / 비는 슬픔을 씻고 있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2.
박진호 시인 / 비는 슬픔을 씻고 있다

박진호 시인 / 비는 슬픔을 씻고 있다

 

 

비 온 뒤의 맑은 하늘처럼

슬픔은

마음의 섭리에 맡기는 것

바람은 좌절의 감정을

비로 말한다

아픔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박진호 시인 / 어둠을 만날 때

 

 

잠 못 이루는 어둔 밤

사막을 건너야하는 순간이 올 때

 

흔적은 볼 수 없다

휩쓸려 가는 어지러운 시간

 

별빛따라 모래 언덕 넘는

갈증의 황량함

 

그럼에도

별빛을 품는 온정에 한 걸음씩 간다

 

-시집 <함께하는>에서

 

 


 

 

박진호 시인 / 간

 

 

a:

간이 오묘해요

소금을 더 칠까요?

물을 더 붓고 졸일까요?

얼마큼 더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꼬집? 두 스푼?

맛이 가버릴까봐요

 

b:

가면 어떻습니까?

적당히 넣으세요

정해진 건 없죠

 

a:

얼마큼 넣어야 맛있는지 모르겠는걸요

맛은 있어야 하잖아요

 

b:

누가 맛보는 거요?

입맛은 전부 다른데요

이렇게 하면 맛있다고요?

난 별로던데

 

남들 입맛 다 맞추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닙디다

그냥저냥 먹을 만하면 드세요

사는게 결국 간 맞추다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소금 치듯 물 붓듯

적당히 농도 맞추고 안 맞으면 맞추고 안 맞으면 또

맞추고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시집 <똑바로 가기 위해 왔다 갔다 했어>에서

 

 


 

 

박진호 시인 / 철길

 

 

끝도 시작도 없는

철길은 애초부터 하나의 길

신호등도 이정표도

기적도 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한다

그누구도

종착역을 묻지도 말하지도 않지만

열차 안 차장 속

노을빛이 불길로 타오르기만 한다

제 몸 스스로 깨뜨려

매일 밤 홀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하늘열차

철길은 기다림이다

하늘을 향해 밤열차는

검은 아기리 속으로 돌진

또 돌진

저 검은 철길은 불랙홀이다.

 


 

 

박진호 시인 / 기억나지 않겠지

 

 

기억나니?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동안

다른 이의 뒤꽁무니만 할느라 말없는 너,

옆에서 난

줄줄이 충혈된 눈들을 잘라냈지

 

질서와 무질서

그 오묘한 중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책임을 뒤집어쓰고

앞만 보느라 바쁜 네가 불쌍하면서도

너의 목적은 명확하고

나의 목적은 덜 명확해서

사이에 침묵의 선을 그었어

 

한 번이라도 멈출 순 없었을까?

네모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은 어둠이고

숲은 콘크리트 바닥인데

 

모르겠지

보지만 보지 않고

가지만 가지 않으니까

 

직진은 직진

라디오는 라디오

110킬로는 110킬로

터널은 터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들 사이에서 난 멀리

있을 거야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의 롱 타임은 끝나지 않고

결코 년

기억나지 않겠지

 

 


 

박진호 시인

2011년 계간 <문파문학> 20호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등단. 문파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성남 지부, 동국문학회, 한국가톨릭문인회,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며, 한국가톨릭문인회 간사. 시집: <함께하는> <똑바로 가기 위해 왔다 갔다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