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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시인 / 비는 슬픔을 씻고 있다
비 온 뒤의 맑은 하늘처럼 슬픔은 마음의 섭리에 맡기는 것 바람은 좌절의 감정을 비로 말한다 아픔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박진호 시인 / 어둠을 만날 때
잠 못 이루는 어둔 밤 사막을 건너야하는 순간이 올 때
흔적은 볼 수 없다 휩쓸려 가는 어지러운 시간
별빛따라 모래 언덕 넘는 갈증의 황량함
그럼에도 별빛을 품는 온정에 한 걸음씩 간다
-시집 <함께하는>에서
박진호 시인 / 간
a: 간이 오묘해요 소금을 더 칠까요? 물을 더 붓고 졸일까요? 얼마큼 더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꼬집? 두 스푼? 맛이 가버릴까봐요
b: 가면 어떻습니까? 적당히 넣으세요 정해진 건 없죠
a: 얼마큼 넣어야 맛있는지 모르겠는걸요 맛은 있어야 하잖아요
b: 누가 맛보는 거요? 입맛은 전부 다른데요 이렇게 하면 맛있다고요? 난 별로던데
남들 입맛 다 맞추다 이 맛도 저 맛도 아닙디다 그냥저냥 먹을 만하면 드세요 사는게 결국 간 맞추다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소금 치듯 물 붓듯 적당히 농도 맞추고 안 맞으면 맞추고 안 맞으면 또 맞추고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시집 <똑바로 가기 위해 왔다 갔다 했어>에서
박진호 시인 / 철길
끝도 시작도 없는 철길은 애초부터 하나의 길 신호등도 이정표도 기적도 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한다 그누구도 종착역을 묻지도 말하지도 않지만 열차 안 차장 속 노을빛이 불길로 타오르기만 한다 제 몸 스스로 깨뜨려 매일 밤 홀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하늘열차 철길은 기다림이다 하늘을 향해 밤열차는 검은 아기리 속으로 돌진 또 돌진 저 검은 철길은 불랙홀이다.
박진호 시인 / 기억나지 않겠지
기억나니?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동안 다른 이의 뒤꽁무니만 할느라 말없는 너, 옆에서 난 줄줄이 충혈된 눈들을 잘라냈지
질서와 무질서 그 오묘한 중간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책임을 뒤집어쓰고 앞만 보느라 바쁜 네가 불쌍하면서도 너의 목적은 명확하고 나의 목적은 덜 명확해서 사이에 침묵의 선을 그었어
한 번이라도 멈출 순 없었을까? 네모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은 어둠이고 숲은 콘크리트 바닥인데
모르겠지 보지만 보지 않고 가지만 가지 않으니까
직진은 직진 라디오는 라디오 110킬로는 110킬로 터널은 터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들 사이에서 난 멀리 있을 거야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의 롱 타임은 끝나지 않고 결코 년 기억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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