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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유수연 시인(춘천) / 청중하게 외롭게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2.
유수연 시인(춘천) / 청중하게 외롭게

유수연 시인(춘천) / 청중하게 외롭게

 

 

외로움은 혼자 하기도 하고

둘이 각자의 외로움으로 슬퍼하기도 한다

 

설득하려 할수록 비참해진다

 

바닥까지 내려가보면

자신의 바닥을 알게 되면

 

발돋움해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바닥을 알고, 내 한계를 알고

그곳을 박차고 나왔더니 다른 바닥이 있다

 

산다는 게 슬픔을 갱신하는 일 같을 때

 

하필 꽃잎도 다 떨어진 봄날

떨어진 건 다시 되돌아가 붙지 않았다

 

깨진 엄지손톱이 자라지 않았고

연약한 건 딱딱한 것에 숨어 있었다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면 뺏기지 않을 줄 알았어

 

간을 두고 왔단 토끼의 변명처럼

두 눈이 빨갛게 눈물을 흘리면

 

감싸진 것을, 그것만 낚아채 가져갔다

 

그물은 물을 버려두고 물고기를 끌어올리지

 

내 마음도 통과되는 줄 알았는데

여과하고 남아버린 게 있구나

 

계속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놓지 않으려다

내 사랑은 최다 아가미가 찢겨 있구나

 

 


 

 

유수연 시인(춘천) / 공양

 

 

 ,같은 돌인데 개를 닮은 돌에는 아픔이 느껴졌다 같은 돌인데 사슴을 닮은 돌에는 들판이 느껴졌다 같은 돌인데 천년 왕릉을 지킨 석상에는 영원이 느껴졌다

 

 그래도 영원한 건 없다

 

 금색의 부처가 앉아 있다

 

 계신다 생각하면 부처는 계신다

 그러나 없음까지도 생각에서 지워야 한다

 

 수많은 여념이 쌓였고

 돌도 털어보면 먼지가 났다

 

 이곳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 틈에 떨어뜨리자 맑은 종소리가 났다

 

 


 

 

유수연 시인(춘천) / 에티켓

 

 

내 삶이 실례라는 걸 안다

 

거리에는

슬픈 노래가 많아지고

 

계절에 맞는

감정이 다양해지고

 

집은 불러도 말이 없다

 

가로등을

촛불이라 생각하자

 

기도하는 목소리가

먼저 소란이 됐다

 

밀려가는 비를 따라 잠겨드는 입

 

웃을 일이 없어

웃는 걸 연습하며

 

엉킨 농담을

징그럽게 건져내며

 

쉽게 깨질 몸을 겨우 숨긴다

 

숨쉬지 않으면

사는 걸 잊는다

 

말하지 않으면

들키지 않는다

 

비는 내리고

살기 힘든 곳에

 

새들이 먼저 세를 든다

 

 


 

 

유수연 시인(춘천) / 생각 담그기

 

 

뼈 없이 붙는 살이 없듯

 

내가 먹은 게 나를 만들고 나를 담은 게 나를 말한다

 

물을 채우면 물병이 된다

 

이끼를 풀기 위해

비우고 채우고 있었다

 

물을 기르던 네가

꽉 쥔 주먹을 힘차게 던지고

 

가장 먼 물수제비를 본다

 

영영 찾기 힘들 것이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건

놓은 후에 잡고 싶어지니까

 

그래도 흘러가는 걸 잡고 싶다

내 앞에서 울던 때

 

처음 진심을 들키고 싶었다

 

 


 

 

유수연 시인(춘천) / 문안

 

 

달걀을 까서 앞에 놓아주고 있었다

너는 겨울이 아닌 날에도 입김을 만들 수 있다

 

입을 오래 다물고 있던 네가 입을 열자

흰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걸 놓치면 다른 무언가도 놓칠 것만 같았다

 

목련 가지마다 껍질 벗긴 달걀이 앉았다

아침이면 도로에 잔뜩 으깨져 검정으로 죽었다

 

그런 걸 보며 검은 눈이라 말하고

그런 비유가 숙연해지는 순간이 싫었다

 

봄인데도 겨울이라 말하는 건 괜찮다

그래, 올해 겨울은 유난히 길다 말해주면 된다

 

짐승이 먹지 못하는 건 분리해 버려야지

껍질의 파편을 침 묻혀 하나씩 올린다

 

하나하나 검은 봉지에 들어가는 걸 보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어떡할까

그 생각이 대신 미래를 방문하고 있었다

 

 


 

 

유수연 시인(춘천) / 서가를 지키는 이

 

 

언제까지 조용해야 합니다

침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음료와 음식물 섭취는 금지입니다

 

서가에서는 생각이 말을 앞지른다

생각은 숨이 없는 목소리

 

재채기를 회무침이라고

뱉는 사람도 있습니다

 

윤희는, 회무침

이라고 생각을 뱉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지만 그런 말이 나와 버릴 때가 있고

그런 말은 그런 생각을 담지않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이해될 때가 있었다

 

말은 사람의 그릇이었고

말과 생각이 같은 그릇에 있으면

영혼의 비빔이라고 분류하기로 했다

 

괄호는 그릇된 영혼을 담기에 좋았으므로

소리 내 읽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담아놓기 좋았다

 

생각의 기반은 무엇이었을까요

인간이라는 시시템은 생각을 기반으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도서관은

먼 항해를 떠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요?

 

여기에는 오류가많았다

분명 본 것이었는데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되, 돼. 않

같은 것에 분노하는 중에도

 

틀리고 다른 것에

 

같고 미묘한 것에

 

사랑과 사랑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들이

기억하기로 한 것과

기억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 기억하기로협의했다

 

그곳에 도착해야 했다

 

마지막 도서관이 추락하는 날에

갈대를 사서 심은 도심의 옥상이었다

 

서가를 옮겨야지

서가를 지켜야지

 

마지막 디바이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동네』 2020-5월호에서

 

 


 

 

유수연 시인(춘천) / 직성

 

 

이런다고 풀릴 게 아니다

 

우리 영혼은 껍질에 둘러싸여 있고

너는 내가 잠들었을 때

 

내 비늘이 비비빅 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에 얼굴을 얹는 건 진부하지만 따뜻한 온도다

 

비비빅은 어떤 소리일까

 

혹시 공감각적 심상이니?

물어보려 하니 너는 언제나 잠들어 있다

 

이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아슬아슬하다, 정말 그렇지 않니?

언제 엄마가 들이닥칠지 몰라 내가 오면 말이야

걸쇠를 꼭 걸어둬 숨을 시간은 벌어야 할 거 아냐

 

새로 우리가 집을 구했지만 우리의 집이지만

도망치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면 들킨다

도망치면 들킨다

 

이런 생각이 풀리지 않게 되었을 때

망치가 닳기 시작했다

 

 


 

 

유수연 시인(춘천) / 생각 밝히기

 

 

누를수록 자랐다

 

책에 그은 밑줄이 두꺼워지고

힘이 자란 줄마다 강조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펼쳐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

 

교실을 옮길 수 없다

 

집 앞으로 옮기면 지각하지 않고

그곳으로 집을 옮기면

 

모두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혼이 깨진 이가 담뱃불을 빙빙 돌리고 있다

그 사라지는 원에 채울 게 없다

 

어둠을 그을 흉터가 하나둘 켜진다

가릴 수 없는 소리였다

 

 


 

유수연(춘천) 시인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문학레이블 공전》 소속. 비주얼문예지 『MOTIF』 발행인 및 편집인.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