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숙 시인 / 겨울, 경유지
목적지를 입력 하세요 목적과 희망을 구분할 수 있을까 밤새 내린 폭설이 찻길을 막아섰다 빙판에 미끄러져 처박힌 차를 두고 사람들은 걸어서 집에 갔을까 가야 할 곳은 사라지지 않고 목적지는 언제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늦어지면 발을 동동 굴렀다 도착하면 그랬다 또 다음 도착할 곳이 생겨나곤 했다 춘천 가는 시외버스 첫차를 탔다 오늘 같은 날 입원한 엄마는 자식을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어제 저녁까지도 걱정 마라 휠체어 탈 때 고정쇠를 잘 누르겠다 몇 번씩 다짐해 놓고 우등버스 3번 좌석에 앉으니 흰색의 상영관이 펼쳐졌다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눈을 받쳐 든 나뭇가지들이 화면 가득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 때문에 하늘도 은빛으로 소용돌이 쳤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흰색이 두른 침묵을 바라보며 흰 베일에 덮인 겹겹의 색과 목소리들을 생각한다 청평 내리실 분 안 계신 가요 없는 줄 알면서도 차 문이 열리고 닫힌다 텅 빈 편지함을 한번 열어볼 때처럼 날아온 찬바람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가평에서는 누가 타려나 눈 쌓인 미끄럽고 어두운 길을 헤치고 이른 아침 정류장에 나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이 안고 오는 흰 눈 같은 이유를 오늘은 다 알 것만 같고 어디가세요 목적 없이 먼저 말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희고 차가운 길이 거쳐야하는 삶의 통로처럼 길게 뻗어있다 -계간 『시와산문』 (2025년 봄호)
신현숙 시인 / 문 밀고 들어왔다 당기시오였는데
나는 문을 밀어내고 다정한 사람도 밀어내고
인맥 있으세요? 그럴 리가요
라테의 거품을 보며 생각 한다 도무지 복잡한 문 열기에 대해 광장에는 전쟁이 계속되어도 난로 위에 물이 끓는 풍경은 그림책 속의 일이고
어떤 안쪽은 사막보다 황량했다
대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버리고 나온 집 안을 맴돌았다
가방끈을 올려 메고 팔을 휘저으며 문 앞에 달려가 펄쩍 뛰어 보는 거다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찧어보는 거다
반 지 계단을 가득 채운 저녁 햇살이 철문 손잡이에서 출렁 인다 오늘의 커피가 방울방울 내려오고 비상구를 향해 붉은 얼굴로 누군가 뛰어 나간다 폐문입니다 어깨를 일그러트리며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6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임호상 시인 / 민화투 외 7편 (0) | 2026.01.23 |
|---|---|
| 강일규 시인 / 핑계의 핑계 외 6편 (0) | 2026.01.23 |
| 윤희경 시인 / 꿈을 수선하다 외 6편 (0) | 2026.01.23 |
| 손계정 시인 / 네게로 간다 외 1편 (0) | 2026.01.23 |
| 윤유나 시인 / 세상이 깨끗하다 외 4편 (0) | 202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