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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현숙 시인 / 겨울, 경유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3.
신현숙 시인 / 겨울, 경유지

신현숙 시인 / 겨울, 경유지

 

목적지를 입력 하세요

목적과 희망을 구분할 수 있을까

밤새 내린 폭설이 찻길을 막아섰다

빙판에 미끄러져 처박힌 차를 두고

사람들은 걸어서 집에 갔을까

가야 할 곳은 사라지지 않고

목적지는 언제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늦어지면 발을 동동 굴렀다

도착하면 그랬다 또 다음 도착할 곳이 생겨나곤 했다

춘천 가는 시외버스 첫차를 탔다

오늘 같은 날 입원한 엄마는 자식을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어제 저녁까지도 걱정 마라 휠체어 탈 때 고정쇠를 잘 누르겠다

몇 번씩 다짐해 놓고

우등버스 3번 좌석에 앉으니 흰색의 상영관이 펼쳐졌다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눈을 받쳐 든 나뭇가지들이 화면 가득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 때문에 하늘도 은빛으로 소용돌이 쳤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흰색이 두른 침묵을 바라보며

흰 베일에 덮인 겹겹의 색과 목소리들을 생각한다

청평 내리실 분 안 계신 가요

없는 줄 알면서도 차 문이 열리고 닫힌다

텅 빈 편지함을 한번 열어볼 때처럼

날아온 찬바람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가평에서는 누가 타려나

눈 쌓인 미끄럽고 어두운 길을 헤치고

이른 아침 정류장에 나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이 안고 오는 흰 눈 같은 이유를

오늘은 다 알 것만 같고

어디가세요

목적 없이 먼저 말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희고 차가운 길이

거쳐야하는 삶의 통로처럼 길게 뻗어있다

​​

-계간 『시와산문』 (2025년 봄호)

 


 

신현숙 시인 / 문

밀고 들어왔다

당기시오였는데

 

나는 문을 밀어내고

다정한 사람도 밀어내고

 

인맥 있으세요?

그럴 리가요

 

라테의 거품을 보며 생각 한다

도무지 복잡한 문 열기에 대해

광장에는 전쟁이 계속되어도

난로 위에 물이 끓는 풍경은

그림책 속의 일이고

 

어떤 안쪽은 사막보다 황량했다

 

대문을 박차고 나왔는데

버리고 나온 집 안을 맴돌았다

 

가방끈을 올려 메고 팔을 휘저으며 문 앞에 달려가

펄쩍 뛰어 보는 거다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찧어보는 거다

 

반 지 계단을 가득 채운 저녁 햇살이

철문 손잡이에서 출렁 인다

오늘의 커피가 방울방울 내려오고

비상구를 향해 붉은 얼굴로 누군가 뛰어 나간다

폐문입니다

어깨를 일그러트리며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6월호 발표

 

 


 

신현숙 시인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16년 공무원 문예대전 수상. 2024년 제9회 계간 《시와 산문》 신인문학상 우수상에 당선되어 등단. 청계산 자락 작은 농장의 유기농 텃밭 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