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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성현 시인 / 산천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6.
박성현 시인 / 산천어

박성현 시인 / 산천어

 

 

 언덕 위의 공장에 햇살이 가득했을 때, 나는 언덕을 오르는 산천어를 보았네. 모눈처럼 가지런 한 공장의 담벼락, 청동의 녹이 핀 철문을 지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유난히 검은 산천어, 비탈을 거슬러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는데

 

 언덕 위의 흰 구름은 공장의 굴뚝보다 아주 높았으며, 흰 바람은 까마득히 높은 곳으로 흘러가 고 있었네. 삼교대 작업을 마친 사람들이 지천에 핀 진달래 핏빛 웃음을 지르며 내려오고, 공장 주차장에서는 청년들이 철밥이 묻은 얼굴로 힘껏 공을 차고 있는데

 

 그렇게 운주사 같은

 

 봄의 시화공단 한 귀퉁이에서

 

 나는 아주 먼 스리랑카에서 흘러온 한 마리 산천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대추나무 꽃 같은 희고 눈부신 밀밭의 언덕, 그러나 벼락을 맞아 시꺼멓게 타버리고만 세상의 뒤란에서, 문득 옆구리가 저리고 아픈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루에도 불쑥불쑥 천 개의 탑과 천 개의 불상이 치솟았다 허 물어지는 시화공단 한 귀퉁이에서 산천어는 두껍고 검은 근육을 움직여 페달을 밟고 있는데

 

 


 

 

박성현 시인 / 개미가 끓었다

 

 

 물기가 없어도 아카시아는 쑥쑥 자랐다. 마른 햇빛이 곁에 앉아 천천히 잎사귀를 쓰다듬었다. 잎사귀 표정을 살피다가 내 얼굴이 저 빗금 어딘가에 기울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동네 어디선가 굿판이 벌어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온몸에 살이 찾아왔다. 어깨에서 내려오라 했지만, 내 말은 귀신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 씹다 만 아카시아가 백태로 변하는 꿈이었다.

 

 나는 문지방에 앉아 얼굴에 마마자국이 얽긴 사람들을 살폈다. 나도 그 구멍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 무당이 가고 동네 개 몇 마리도 사라졌다.

 

 아카시아는 잘 자랐지만, 사람들은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 그 누군가의 사나운 병은 다른 누군가의 집을 기웃거렸다. 수십 년 묵은 서까래에 버짐을 먹은 듯 개미가 끓는다.

 

 


 

박성현 시인

1970년 서울 출생.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문학박사). 2009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시집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 2013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2018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서울교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