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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시인 / 산천어
언덕 위의 공장에 햇살이 가득했을 때, 나는 언덕을 오르는 산천어를 보았네. 모눈처럼 가지런 한 공장의 담벼락, 청동의 녹이 핀 철문을 지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유난히 검은 산천어, 비탈을 거슬러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는데
언덕 위의 흰 구름은 공장의 굴뚝보다 아주 높았으며, 흰 바람은 까마득히 높은 곳으로 흘러가 고 있었네. 삼교대 작업을 마친 사람들이 지천에 핀 진달래 핏빛 웃음을 지르며 내려오고, 공장 주차장에서는 청년들이 철밥이 묻은 얼굴로 힘껏 공을 차고 있는데
그렇게 운주사 같은
봄의 시화공단 한 귀퉁이에서
나는 아주 먼 스리랑카에서 흘러온 한 마리 산천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대추나무 꽃 같은 희고 눈부신 밀밭의 언덕, 그러나 벼락을 맞아 시꺼멓게 타버리고만 세상의 뒤란에서, 문득 옆구리가 저리고 아픈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하루에도 불쑥불쑥 천 개의 탑과 천 개의 불상이 치솟았다 허 물어지는 시화공단 한 귀퉁이에서 산천어는 두껍고 검은 근육을 움직여 페달을 밟고 있는데
박성현 시인 / 개미가 끓었다
물기가 없어도 아카시아는 쑥쑥 자랐다. 마른 햇빛이 곁에 앉아 천천히 잎사귀를 쓰다듬었다. 잎사귀 표정을 살피다가 내 얼굴이 저 빗금 어딘가에 기울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동네 어디선가 굿판이 벌어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온몸에 살이 찾아왔다. 어깨에서 내려오라 했지만, 내 말은 귀신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 씹다 만 아카시아가 백태로 변하는 꿈이었다.
나는 문지방에 앉아 얼굴에 마마자국이 얽긴 사람들을 살폈다. 나도 그 구멍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 무당이 가고 동네 개 몇 마리도 사라졌다.
아카시아는 잘 자랐지만, 사람들은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 그 누군가의 사나운 병은 다른 누군가의 집을 기웃거렸다. 수십 년 묵은 서까래에 버짐을 먹은 듯 개미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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