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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용목 시인 / 무서운 슬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6.
신용목 시인 / 무서운 슬픔

신용목 시인 / 무서운 슬픔

 

 

뱀은 모르겠지, 앉아서 쉬는 기분

누워서 자는 기분

 

풀썩, 바닥에 주저앉는 때와 팔다리가 사라진 듯 쓰러져 바닥을 뒹구는 때

 

뱀은 모르겠지,

 

그러나 연잎 뜨고 밤별 숨은 연못에서 갑자기 개구리 울음이 멈추는 이유

 

뱀이 지나가듯,

 

순식간에 그 집 불이 꺼지는 이유

 

 


 

 

신용목 시인 / 겨울 부석사

 

 

 이 산사 고요를 덖는* 풍경소리를 한 숟갈만 떠 당신의 마른 입술에 후후 불어주고 싶었습니다 별빛을 대신하여 서성이던 눈발들이 하늘 가득 사태로 져 어느 모퉁이 불 나간 외등처럼 떨고 있을 때 그을음 돌들이 하늘에 떠서는 마음을 잃고 그대로 먹장의 구름이 되었는데요 하느작하느작 검은 구들을 지고 오는 지게꾼의 걸음이 눈발처럼 조심스러이 어둠은 가만히 당신 시린 이마를 짚고 갑니다 모든 풍경이 한 장 그림자에 가려 캄캄해지는군요 고작에 가닥 없는 그리움이 우리를 예까지 이끈 것처럼 슬몃 갈아덮는 한 막의 공기가 우리를 깎은 난간에 외롭게 합니다 그리하여 벗은 나무마다 매달린 검은 먹의 마음은 어느 시절을 갈아 묽은 가지 끝 당신의 속눈썹 하나 그럴 수 있을지요 이도저도 아닌 먼 능선을 짊어지고 산은 산대로 추녀는 추녀대로 희미한 앞섶 강물로 지는 것을 풍경소리로만 노를 저어 당신에게 가는 물살은 또 물살대로 가장 먼 곳의 눈발처럼 한 숟갈씩 세월을 떠 넘깁니다

 

*덖다 : 물기가 조금 있는 고기나 약재, 곡식 따위를 물을 더하지 않고 타지 않을 정도로 볶아서 익히다.

 

 


 

신용목(愼鏞穆) 시인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의 끝 거창』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시간에 온다』. 시작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등 수상. 2017. 제18회 현대시작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