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희섭 시인 / 우여곡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9.
이희섭 시인 / 우여곡절

이희섭 시인 / 우여곡절

 

 

가장 힘들게 오르는 절

 

화려하고 빛나는 곳이나

절박함이 없이는 끝내 오를 수 없는 절

 

비가 되지 못한 구름들이 모여

어떤 마디에서 쉬며

어느 곡절의 경전을 읽어야 할지

수군대는 소란스런 절

 

그 계곡에 들어서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굴곡이 있어

새들도 깊은 숨 들이쉬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지

 

내 안에 있는 화엄을

끝없이 찾아가는 절

 

- 시집 <초록방정식> (서정시학)에서

 

 


 

 

이희섭 시인 / 2층에서의 오독

 

 

2층에서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지나가는 어깨에 눈빛을 떨구면

떨어진 눈빛이 왼쪽을 향해 걸어간다

 

시선들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간다

오독의 안쪽을 가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본다

지나가는 이들을 묵독默讀하는 2층에서

 

차들은 거리의 바닥을 읽고 지나가고

스쳐가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어깨들을 펼쳐본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거리를 필사하는 사람들의 걸음에서

쓸쓸한 문장이 읽혀지고

 

가끔 들썩이는 어깨 위를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의 여정에 고독감이 밀려오기도 하고

다가갈 수 없는 어깨가

가벼워지기도 하는 일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짜디짠 눈물을 읽어 주는 일

 

외로움의 시간은 늘 젖어 있어

건드리기만 해도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들의 어깨에 얹혀진 눈빛이 용서처럼 멀어져가고

세상으로 빠져나온 것들이 머무는

환한 페이지의 안팎이 뒤섞인다

 

건너편에서 누군가

나를 펼쳐보고 있다

 

-『문학과창작』 2017-가을호

 

 


 

이희섭 시인

1960년 경기도 김포 출생. 건국대 행정대학원 석사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200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스타카토』 『초록방정식』. 한국작가회의 회원. 현재 중부지방국세청에 재직중. <시우주> 회장으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