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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연수 시인 / 의심이라는 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30.
최연수 시인 / 의심이라는 병

최연수 시인 / 의심이라는 병

 

 

의심하려 들면 의심할 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의심을 하고픈 병,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병.

그 병이 말썽이어서 진실의 여부는 상관없는 듯해 보이는 것.

과장 같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에게만 귀를 열고

들려주고 싶은 것들을 아무에게나 쏟아냅니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과장된 스토리 속 등장인물은 항상 의심스럽고

의심으로 시작해 의심으로 결말이 나는 것들.

 

더위에 더 더워지는 일들에게

너른 바다 한 번 보라고,

속까지 서늘해지는 얼음물 한 잔 권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오늘도 시원하게 보내세요.

 

* 아베 코보, 소설 '모래의 여자' 중에서

 

 


 

 

최연수 시인 / 우리가 기다리는 것들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두 방랑자가 기다리는 '고도'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사람.

그들의 기다림은 오래되어서

 

 마치 습관처럼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질문도 하고

 

욕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장난도 치고 춤도 추지만

 

고도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느 소년이 기별을 알려옵니다.

고도는 내일 오기로 했다고.

그러나 그 소년도 고도를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내일은 또 내일이 되어

 

반복되는 기다림은 이어집니다.

 

끝내 나타나지 않는 고도.

그 고도는 무엇일까요. 누구일까요.

어쩌면 이미 다녀갔는데 모르고 지나간 것일까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고도는, 간절한 희망 혹은 기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생을 마칠 때까지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 기다림이 일생일수도 있습니다.

대단한 인물이나 대단한 무엇은 아니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이 즐거움일 수도 있고 지루함일 수도 있는 것은

각자의 생각이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테지요.

 

 


 

최연수 시인

2015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2015년  《시산맥》 당선.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