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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시인 / 옥탑방
내 산동네 옥탑방에도 긴 여름이 왔다 방문을 닫아걸고 오래지도 않은 맹세를 어기고 녹슨 쇠사슬에 금칠하는 신문을 자주 읽은 탓에 나는 체온보다 더 높은 더위를 먹었다 참기름 친 미역국도 입에 붙지 않았다 깊은 바다 밑바닥 넙치마냥 누워 밤이 오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낮이라곤 살아있는 것이라곤 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기계톱이 돌아가는 소리밖에 없었다 높이 달린 창으로 달이 걸리는 비로소 밤이 오면 일제히 켜진 세상이 불빛들이 사라져버릴 때까지 옥상에 나가 무릎을 감싸고 앉아 바람을 맞았다 그러면 언제부터일까 어둠에 묻혀 위태롭게 반짝이는 야윈 별들의 하늘 아래서 건너편 산등성이에 늘어선 나무숲이 여인의 풍성한 머리칼로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가뭄이 만발한 이 여름이 가면 낡고 얇은 슬라브 지붕 아래 옥탑방에 갇혀 타버린 내 水耕의 양파 같은 육신에도 저 나무숲의 휴식이 찾아오리라, 그러나 새벽이 가까워도 한낮은 시들지 않고 나는 열이 가시지 못한 바알간 눈으로 동쪽 하늘을 응시할 뿐이었다 내 외따른 옥탑방에도 긴 여름이 군림하는 것이었다
방민호 시인 / 방금 연잎이
방금 연잎이 빗물을 덜아냈다 연잎에 함뿍 담겨 있던 빗물 그 잎 살며시 어깨 기울이자 또르륵 굴러 연못으로 갔다 잠깐 품었다 떠나보낸 길 잠깐 머물렀다 떠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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