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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 시인 / 비둘기들
네 식구였다
하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을 훑고 다니고 하나는 안전선 밖에서 종종거라고 하나는 뜨거운 레일 위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푸득 날아 건너편으로 가고
하나는 제 집인듯한 전철 플랫폼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빠알간 맨발이었다
이경림 시인 / 神들의 도매상 -가방 도매상에서
신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속을 긁어낸 악어 물소 장어 산양 늑대 돼지들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가방이 된 신들의 빈속을 누군가 신문으로 채워 넣고 있었다
네모난, 둥그런, 쭈글쭈글한, 번쩍번쩍한, 온갖 색깔의 신들은 트럭에 대량으로 실려 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여인들에게 하나 둘 팔려가기도 했다
어떤 여인이 신들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 이거 더 싸게 안돼요? 주인이 앙칼지게 신들을 뺏어 제 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 여긴 도매상 이예요
때로 제 무게를 못이긴 신들이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그 골목으로 커피장사가 지나가고 국밥장사가 지나가고 짐꾼이 지나가고 일수쟁이가 지나가고 지나가는 동안 남은 신들은 죽은 듯 박혀 있었다.
- 이놈의 불경기는 언제 끝나나
천년이 하루였다
- <'현대시학 '신작소시집>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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