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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 시인 / 퇴임 연주회
동료 퇴임 축하 연주회, 체임버홀에 들어선다 어린 학생들뿐, 올만한 동료들도 보이지 않는다 '퇴임은 축하하는 것이 아닌가?' 의자 깊숙이 몸을 숨긴다
연주자들은 제각기 생의 오욕과 환희를 두드린다 마침내 크레센도에서 데크레센도로의 나지막하고 정밀한 소리.....
연주가 끝나고 학과 연주자들이 일렬로 서서 함께 한 세월을 회고한다 희락과 환란의 표상들 모두가 즐거웠단다, 간혹 어색하게 손을 잡기도 한다
주저하며 연주회장을 나서는데 누군가 도망치듯 날쌘 걸음으로 앞지른다 선연한 알몸을 바라본다 잠시 비틀거린다
성숙한 영혼이나 유쾌한 종말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허망과 미망뿐 울컥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은 여름밤이다.
-시집 <잃어버린 골목길> (서정 시학 2016)
김구슬 시인 / 1월의 여름 - 에밀리의 정원*
해가 지자 에밀리의 정원엔 가느다란 눈발이 온갖 구근을 키워낸다
레노베이션 안내 팻말과 펜스에는 눈송이가 서있고 하얀 드레스가 히아신스의 꿈틀거림에 화답한다
흙에 이끌려 흙 속에 신발한짝 잃어버린 소녀, 그 황홀한 유년에 시작된 꽃의 노래가 정원에 가득하다
에밀리 정원의 1월은 매혹의 여름, 시의 원년이 꽃과 나무의 뿌리에서 시작된다
꽃을 따는 순간 생명의 절정은 침묵으로 빛난다
꽃을 따서 말리고 압화로 만드는 과정이 시의 그물이 된다 에밀리의 시는 꽃을 따서 모은 생명의 노래이다.
*에밀리 디킨슨 박물관 내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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