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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 시인 / 나무 성당
푸조나무 성당에 다녀오면 고해하지 않아도 죄다 사해진 거 같네 이슬바심 발목 적시며 아침마다 다녀오네 나뭇잎 사이 빛나는 햇살 성체조배라네
허물이래야 기껏 발치에 매단 매미 허물 몇개가 전부인 나무는 하지만 단 한 번도 내 허물 탓한 적 없네
매미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제 허물 나무에 고스란히 벗어두고 승천하였네 땅속 궁구가 그 어떤 뜻에 다다랐을 때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거듭난 것 뒷덜미의 날카로운 상처는 거듭난 영혼의 예리함을 보여주지 찢어지는 저 울음소리가 그걸 말해준다네
푸른 그늘 서늘한 나뭇잎 궁륭은 잠시 경건해지기 적당한 높이라네 일테면 내 가슴에도 서늘한 궁륭이 따라 생기지
푸조나무 성당에 다녀오면 내 죄다 사해진 거 같다네
-시집 <물방울 무덤> 2007
엄원태 시인 / 골목 안 국밥집
골목 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했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 동료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졸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나 적당히 젖어 있던 그 식당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께 늘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 현장에서 나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물어져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시집 『소읍에 대한 보고』 문학과지성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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