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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주 시인 / 모르는 척 서울
모여라 사람 사는 세상 속에 묻혀 보고 싶은 사람 모여라 잘 먹고 잘사는 법도 살아봐야 알지 빈 그릇에도 민들레는 소복이 피는 것을 나비는 알지
겨울 지난 생가지는 봄 꽃놀이를 하고 불 땐 부지깽이는 불꽃놀이로 밤을 잊어버려요 모르는 척 은밀한 서치라이트로 광장에는 양귀비 붉은 꽃말을 흘려요 그늘의 반은 쾌락을 그리며 생의 반은 기생충이라며 워터밤의 물꽃놀이에 빛마저도 젖어버려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있겠나 건방진 소리 궁궐 기둥과 북촌 사이엔 기왓장마다 장이 열리죠 장의 반은 바람이고 사람의 반은 허깨비죠 밥의 반은 꽃이고 사랑은 닮은 꼴 찾기지 방자야, 생은 계급을 나누지 않을 수가 없단다 도련님,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혁명이 있구먼요 미쳐가는 팽이를 되돌리고 싶은 순간 죽창 끝에서 방자가 다이빙해요 참 살만한 세상 하루의 반은 헛꽃이 되어 먼저 시들어 버리죠
오늘은 언덕에 어깨를 붙이고 기대어 살아야 해요 볼이 붉은 정인에게 손금 같은 물관을 보내 주세요 피맛골 시전에서 전통과 예술의 정치를 하거든요 어둠은 밤마다 포장마차로 항해하는데 순백의 하루를 받아 든 새는 어디쯤 불의 척추를 세울까요 오래된 질문에 달빛을 쓸어내리면 조선의 징이 울리죠 징 소리 녹아 흐르는 한강 물은 백만 겁의 시간을 향해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주문을 외듯 모르는 척 서울
-웹진《님Nim》 2024년 12월호
배윤주 시인 /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새 떼 바람을 향한 부리 모두 한곳을 응시하고 있어요
온전한 것들은 이미 온전하지 않은 길 위의 외사랑이에요
맞바람에 수없이 베이는 날개들 지나가버린 것과 다가오지 않은 것들 사이에선 물결이 일고 밤은 충분히 어두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보여주는 훤한 몸짓은 보이지 않아요
파란 수국꽃이 다발로 피는 물보라에 별이 완전히 젖어요
방향을 찢고 포효하는 폭풍우에도 초승달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들이 있어요
-시집 『옆으로 누운 말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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