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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시인 / 착한 시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 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정일근 시인 / 그 후, 오동꽃 피다
불현듯 너 떠났다 슬픔에 내 살 녹아 내 살 속의 뼈가 뼛속의 피가 녹아 나는 붉은 피로 남았다 내 슬픔 그 피에 녹고 또 녹아 눈물도 붉디붉은 피눈물만 남았다 지난여름부터 붉은 슬픔 붉은 피눈물 받아준 오동나무 그 독까지 다 받아준 오동나무 오늘 보랏빛 꽃 피웠다 더러는 누런 추억이 등 뒤로 찾아와서 귓불 간질이는 낡은 휘파람 불었다 운명이 내 등짝 짝 소리 나게 치고 갈 때 돌아보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울었다 시를 쓰지 못하고 버려진 백지 위에 뚝, 뚝 떨어진 피눈물 스스로 길을 내고 그 길 따라 강물처럼 흘러갔다, 끝내 바다에 닿지 못하고 지쳐서 돌아온 새벽 돌아보니 오동꽃 피었다 사람의 슬픔은 풍화하는 것이다 더 아픈 주검도 풍화하는 것이다 바람이 나를 깨끗이 씻어 보랏빛 오동꽃으로 활짝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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