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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용헌 시인 / 어떤 후생後生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
이용헌 시인 / 어떤 후생後生

이용헌 시인 / 어떤 후생後生

 

 

의자가 되기 위하여 나무는

오래 서 있는 법을 배웠다

의자가 되기 위하여 나무는

밖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의자가 되기 위하여 나무는

새들을 앉혀보고

바람을 앉혀보고

어둠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웠다

의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의자가 되는 순간 나무는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한평생 받들던 하늘 대신

영혼으로 사람을 받들었다

 

-계간 『시와정신』 2022년 여름호에서

 

 


 

 

이용헌 시인 / 울음의 난해성

 

 

한낮의 그늘 속에서 매미가 운다. 매미는

제 몸보다 큰 울음보를 투명한 날개 밑에 둔 까닭에

일생동안 울음을 감추지 못한다.

몸 밖으로 나온 울음들은

천지사방 그늘을 퍼뜨리고

그늘이 닿는 곳마다 무가내하로 무너지는 적요

고요의 끝자락엔 그늘보다 먼저

슬픔이 드리워져 있음을

매미는 알지 못한다.

 

한낮의 땡볕 아래서 나무가 흔들린다. 나무는

제 이파리보다 큰 그늘을 무거운 둥치 아래 가둔 까닭에

한 발자국도 걸음을 떼놓지 못한다.

뿌리로부터 전해오는 미동들은

나이테 깊숙이 속울음으로 저장되고

속울음이 터질 때마다 그늘을 당기며 일어서는 바람

그러나 바람의 나부낌이 뿌리의 속울음이라는 것을

나무는 알지 못한다.

 

한낮의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서성인다. 사람들은

나무보다 짙은 그늘을 두터운 가슴속에 둔 까닭에

한평생 속울음마저 삼켜야한다.

속으로 속으로만 쌓여진 울음들은

마음속 지평에 그늘을 이루고

그늘의 깊이만큼 깊어진 슬픔으로

해가 지고 밤이 온다는 것을

울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시집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 천년의시작

 

 


 

이용헌 시인

1959년 광주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통해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작 시인선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 도서출판 돋을볕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