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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희 시인(장흥) / 돌 쌓는 예술가
어느 마을에 한 사람이 살았다지 그는 돌 쌓는 예술가라지 수많은 세상의 돌들을 그냥 쌓아보았다고 하지 마치 형체도 없는 삶의 그 부조리함을 일으켜 세워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하, 그냥 아무런 의식도 없었는지도 모르지 일상의 삶이 그러하듯이 꼭 그 자리에 무슨 의미를 가지고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나는 것도 아니기에 이미 그는 알고 있었겠지 그렇게 흘러가는 하루가 일상이 허무해서 돌을 세워보았겠지 돌 같은 자기, 자기 같은 돌들 수없이 널려있는 뒹구는 돌들을 가지고 일상처럼 가지런히 세워보았겠지 아침에 깨어 일어나는 자기를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를 영원히 누워버리고 싶은 자기를 사람의 형태로 그러니까 존재의 뿌리를 세우고, 내리고 세상에 발 딛고 있다는 실감을 위해 몸통을 만들었겠지 그리고 몸을 만들다 보니 바라보는 시선의 꼭대기를 세웠겠지 마음을 그 위에 얹어놓고 싶었겠지 위태위태한 그것을 가까스로 세워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겠지 비록 쌓았다 허물어지는 삶이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겠지 자기를 그렇게 위로하고 싶었겠지 휘청거리는 자신의 무게중심을 혼신의 힘으로 견디면서 아슬아슬하게 비대칭의 모습으로
조윤희 시인(장흥) / 모항에 떨어지던 동백꽃
복중의 한 여름 동백을 보겠다고 그곳에 갔던가
무작정 내닫던 걸음이 그곳에 머물렀을 때 너무 일찍 와서 동백꽃을 볼 수 없었노라던 시인은 이미 돌아가시고 너무 늦게 가서 동백꽃을 볼 수 없었던 나는 동백꽃이 진 빈자리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 빈 자리에 나를 우두커니 세워놓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들여다 보는 대웅전의 웅숭깊은 속으로 성큼 들어서지도 못하고 미처 열리지도 못한 눈이 뒷걸음질로 물러나와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변산으로 향한다 해변가에 즐비한 상점들, 쾅쾅 울려대는 음악소리들 정작 바다는 잘 보이지도 않았고, 파도소리 들리지 않았다 민박집의 호객꾼들만 나를 붙들고 있었다 변산은 내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땀 한 방울 식히지도 못하고 들끓는 지열의 野馬가 되어 격포로 내달린다 방파제를 거닐면서 채석강의 일부만을 본다 칠천만 년 전의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단애를 읽어내기에 나의 행보는 너무 짧았고, 내 마음이 벼랑이었다 조급증인가 조금때인가 고둥의 알맹이는 대부분 비어있었다 빈껍데기들을 바다에 다시 집어던지며 그곳을 떠나 다시 격포 우체국 앞에 한 꾸러미의 소포로 퍼질러 앉아버린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수취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모항 가는 길을 물어본다
모항, 모항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어머니 모자냐고 묻기도 하고 아무개 모자냐고 묻고 모색할 모자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한다 나는 나름대로 모항을 생각하기로 한다 모호해진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곳 모항에서 하루를 묵기로 한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여장을 푼다 해가 지고 있었다 바다가 없어지고 있었다 이제 내가 사라질 차례다
나는 고창에서부터 끌고 온 술을 친구삼아 마시기 시작한다 동백꽃으로 빚은 술은 아니었지만 빛깔은 아주 붉었다 동백꽃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발목 한 번 담궈보지도 못한 바다가 내 속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비린내 나는 서러움들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 내가 외면했던 길들이, 나를 외면했던 길들이 만장기를 나부끼며 노제를 지내고 있었다
모항,. 그곳은 또 하나의 다른 모서리의 항구 였나보다 떠나오던 날 모항엔 “선창”이라는 노래가사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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