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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무웅 시인 / 겨울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
박무웅 시인 / 겨울비

박무웅 시인 / 겨울비

겨울 숲에 비가 내립니다.

숲에 사는 짐승들의

발자국을 보관중이던 눈들이 녹습니다.

숲에 사는 짐승들의 발자국을 하나 둘 세고

안부를 확인하려 내렸던 눈은

이제 빗물을 타고 저 아래

계곡쪽으로 흘러갈 것이고

불어난 물에선

발굽들이 뛰는 소리가 날 것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나뭇가지들마다

새 움이 트는 소리 같습니다.

여름비는 식물들의 뼈가 되지만

겨울비는 나무들을 깨우는 날짜들이 됩니다.

사계절이 들렀다 가는 숲

숲이 크고 세세한 달력들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저 봄으로부터 걸음을 재면서 온

빗방울들 덕분입니다.

풀씨들에게,

봄까지 몇 걸음 남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숲의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듯

새들이 정성들여 지은 둥지속에선

날짜들의 포란抱卵이 시작될 것입니다.

숲의 봄은

겨울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ㅡ계간 《시인시대》 (2024, 봄호)

 

 


 

 

박무웅 시인 / 시작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에게

주어진 시작과 끝의 횟수가

동일하지 않다는데

내겐 시작이 더 많았을까

아니면 끝이 더 많았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 궁금증을 뒤져보면

남아있는 끝의 개수는 알 수 없고 다만

시작은 꽤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시작은 지금 당장 실행해도 될 것 같고

또 어떤 시작은 때를 조금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

새로 발견한 시작 하나를 들고

이 봄밤을 잠 못 이루는 것이다

지나온 생을 돌아보면

험난했던 시작들과

영예로웠던 끝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시작을 찾고 또 찾는 것이다

끝은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다

팽팽하고 질긴 시작 하나를 골라서

시위를 매고 힘차게 당겼다 놓으면

시작은 저 멀리까지 순식간에 날아가 꽂힌다.

나보다 더 나를 앞질러가는

끝을 저 멀리까지 보내놓고 나는 또

천천히 그곳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모든 가을은 봄에서 시작되었고

또 모든 봄은 겨울에서부터 걸어온 것이니

꽃피는 일을 시작하고

열매 따는 끝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두근거리는 시작 하나를 골라 들고

오랜 궁리를 싹틔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시와정신』 (2022, 여름호)

 

 


 

박무웅 시인

1944년 충남 금산 출생. 19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공중국가』 『내 마음의 UFO』 등. 2014년 세종우수도서 선정. 현재 월간 『시와표현』 발행인, 도서출판 『달샘』 대표. 현재 신성전자부품 회장. 인도네시아 신성테크 회장. 화성예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