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선식 시인 / 자정(子正) 근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
이선식 시인 / 자정(子正) 근처

이선식 시인 / 자정(子正) 근처

 

 

누군가

내 자정 근처 사거리께를

서성거리는 이 있다

제 그림자 무동을 태우고

내 자정의 창문을 기웃거리는 이 있다

 

모른체하자

눈길도 주지말자

들썩이는 마음을 쥐어박다가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내어다보면

 

홀로 제 발등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뿐

서성거릴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발자국뿐

 

-시집 『시간의 목축』 천년의시작, 2011년

 

 


 

 

이선식 시인 / 자기 앞의 생*

 

 

옥수수 잎이 까딱까딱 바람의 혀를 자르고 있다

 

적막이 멍석을 펴고 오수(午睡)를 즐기는 그늘

평상에 나타난 그림자 하나 졸다 깨다

 

호랑 무늬 고양이가 집중하고 있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미동도 없이 도사린 채

틈바구니 어두운 그늘 속에는

겁먹은 깨알만한 작은 눈동자가

생의 벼랑에 서서 공포에 질려 있을 게다

피차 생존이 걸린 숨 막히는 순간

수탉이 있는 대로 목청을 뽑자

팽팽했던 긴장이 와르르 해제됐다

 

어디서 탁주 한 사발 하자는 기별도 없이

날이 저문다

 

*로맹가리의 소설 제목에서 빌려 옴.

 

 


 

이선식 시인

1954년 강원도 양구 출생. 199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시간의 목축』 『귀를 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