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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시인 / 아틀란티스
바닷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 미끄러운 물속의 꿈을 구는 동안 나는 두려움을 데리고 순순히 나를 통과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 막막한 주위를 둘러본다 그곳에는 거대한 유적이 있다 폐허가 남긴 앙상한 미련을 더듬으면 쉽게 부서지는 형상들 점점이 사방에 흩어진다 허우적거리며 아까시나무 가지가 필사적으로 자라 오른다 일생을 허공의 깊이에 두고 연신 손을 뻗는다 짙푸른 기억 아래의 기억을 숨겨와 두근거리는 새벽, 뒤척인다 자꾸 누가 나를 부른다 땅에서 가장 멀리 길어올린 꽃을 달고서 뿌리는 숨이 차는지 후욱 향기를 내뱉는다 바람이 데시벨을 높이고 덤불로 끌려다닌 길도 멈춘 땅속 어딘가, 뼈마디가 쑥쑥 올라왔다 차갑게 수장된 심해의 밤 나는 별자리처럼 관절을 웅크린다 먼 데서 사라진 빛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윤성택 시인 / 붐비는 공중
밀봉된 엘리베이터에 올라 숫자판을 누른다 스위치 윤곽이 희미하다 비석처럼 얼마나 많은 습관이 새겨진 것인지 닳아가는 과거 같은 어떤 기판에선 생이 오래 기념되기도 하지만, 먹구름 구르릉거리는 수직통로를 따라 전 주인의 고지서처럼 낯선 누군가도 얼마간 지문을 남겼을 것이다
지붕 없이 창문만 내 것인 볕은 방향이 바뀌고 벽지에도 서서히 금이 생기는 이 아파트에서는 시간도 비틀려 휜다 먼 생의 손끝이 부르는 시공간이 층층이 열린다 그러나 지금은 바람의 심폐가 계단을 깊게 들이마시는 저녁,
한 평 공간 속에서 몸이 솟구치는 동안 거울 안에는 노인이었다가 아이였다가 나였다가 타인이거나 근친인 외면外面이 겹친다 밤마다 가방은 택배처럼 귀가하고 TV는 통속이 머금은 얼굴에 빛을 뿜는다 소음 번지는 콘크리트를 올려다보며 어떤 이들은 박힌 못처럼 잠들지 못하고 가만히 허공에 떠 살다 갈 이력들, 사람을 길어 올려 조금 더 밝아지는 창문처럼 사십 미터 높이 불빛이 붐비는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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