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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시인 / 독서의 시간
책을 읽을 시간이야 너는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네가 조용히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나는 이혼을 했는데 결혼한 기억이 없어 이혼보다 결혼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그 책에는 이별 이야기가 있을까 어쩌면 네가 지금 막 귀퉁이를 접고 있는 페이지에
나는 생각한다 온갖 종류의 이별에 대해 모든 이별은 결국 같은 종류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키스할 때 서로 서로의 혀를 접으려고 애쓴다
무언가 그 무언가를 표시하기 위해/ 영원히
키스하고 싶다 이별하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나는 천성 바깥에서 너와 함께 일생을 헤맬 것이다
돌아가고 싶다 떠나가고 싶은 것과 무관하게
어디론가 그 어디론가
심보선 시인 / 도시적 고독에 관한 假說
고양이 한 마리 도로 위에 낙엽처럼 누워 있다 몸통이 네모나고 다리가 둥글게 말린 코끼리 같은 버스가 죽은 고양이 앞에 애도하듯 멈춰 있다 누군가 말한다 스키드 마크는 바퀴도 번민한다는 뜻이지 누군가 답한다 종점에서 바퀴는 울음을 터뜨릴 거야 새 시장은 계몽된 도시를 꿈꾸지만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이 그 증거다 멀리서 아련히 사이렌이 울린다 한때 그것은 독재자가 돋우는 공포의 심지였으나 이제는 맹인을 이끄는 치자꽃 향기처럼 서글프다 누군가 말한다 두고 봐 종점에서 바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거야 하루 또 하루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친구들과 죽은 자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 그 증거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고양이 한 마리 또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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