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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시인 / 너도바람꽃
잔설이 힐끔거리며 도망가는 천마산 등성이를 찾아 헤매며 싸돌다가 생전 처음 보는 너도바람꽃을 보고 퍼질러앉아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 셔터를 누를 때에 어머니 당신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생사를 넘나드셨습니다
여든 다섯해 그 짦은 생애를 서러움과 눈물과 한숨으로 삶을 개척하시고 2남3녀 11손자 3증손자 4증손녀 헤아리기도 숨찬 자손들을 어루만지며 키우시어 이제 한 여인의 여생을 복 받으시며 사실 때에 벅찬 가슴에 큰 병을 잉태하시어 서른 해를 시름시름 병을 키우시다가 꿈 같은 노란 산수유 피고 어머니 같은 서럽게 아름다운 너도바람꽃 필 때 어머니 당신은 속절없이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난거지이시며 든부자로 사셨지만 그 많은 자손들의 부귀는 모두 어머니의 속고쟁이와 손끝에서 태어난 것을 어느 누가 모르리까 그러면서도 또 어느 누가 알리이까 눈속에서도 피는 너도바람꽃 어느 누군들 찬란한 5월에 피고 싶지 않으리오만 누군가 차디찬 3월을 그렇게 열어야만 하기에 어머니 당신은 그 짐을 천직인 듯 운명인 듯 마다 않고 지셨습니다
이제 너도바람꽃이 지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바람꽃들이 점점 사라져간다지만 어머니 당신이 남기신 큰 뜻은 또 씨 맺고 싹 트고 깊은 산속 응달에서 분명히 그렇게 숨어숨어 또 피고 지며 악착같이 생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바람꽃 어머니 너도바람꽃 어머니 정말로 사랑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어 천년만년 길이길이 행복하소서
김종태 시인 / 한밤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카메라의 눈만 번득이는 아이스크림 가게 밤의 우주선 속을 유영하듯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둥둥 떠돌 때 함부로 찢긴 비닐봉지들이 휴지통 옆으로 빈둥거리네 냉장고를 스칠 때 느껴지는 열기를 따라 이곳의 어둠은 길고양이들의 천국이지 동이 터오면 낯선 새가 모터 옆에서 알을 품겠지
닫는 시간도, 여는 시간도 없는 이 가게의 밤은 크레파스 통의 뚜껑을 열어놓은 듯이 이미테이션 낙원인 짝퉁 골목의 진열대 같네 인적이 끊긴 쇼핑몰의 쇼윈도우에 비친 끝내 이길 수 없는 인형뽑기 기계의 불빛 같은 출입구에서 우주복을 입은 풍선인형은 알 수 없는 춤을 추네
안 보이는 주인을 아이들 몇이 무서워하며 바코드 찍은 후 체크카드를 투입구에 밀어넣을 때 닫힌 유리문으로 새들의 날개가 부딪는 소리가 들리네 서둘수록 벗어나기 힘든 무중력의 놀이터에 열기 머금은 섬광이 오로라처럼 퍼지고 머물다가 더 멀리 나가떨어지는 유랑의 아이러니
모든 맛의 빛깔들이 술 취한 미로에 갇혀 태어난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부도심의 밤 기다린 사람과 돌아온 사람이 모여 얼음의 지문을 입김으로 닦으며 새시 틈에 끼인 퀵보드의 바퀴처럼 침묵하는 밤 아무도 노래하지 않고 아무도 토악질하지 않아 포장지에 찍힌 형형색색 활자만이 검은 공기 속으로 휘도는 밤 -계간 『문청』 2025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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