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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종태 시인 / 너도바람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
김종태 시인 / 너도바람꽃

김종태 시인 / 너도바람꽃

 

잔설이 힐끔거리며 도망가는

천마산 등성이를 찾아 헤매며 싸돌다가

생전 처음 보는 너도바람꽃을 보고 퍼질러앉아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 셔터를 누를 때에

어머니 당신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생사를 넘나드셨습니다

 

여든 다섯해 그 짦은 생애를

서러움과 눈물과 한숨으로 삶을 개척하시고

2남3녀 11손자 3증손자 4증손녀

헤아리기도 숨찬 자손들을 어루만지며 키우시어

이제 한 여인의 여생을 복 받으시며 사실 때에

벅찬 가슴에 큰 병을 잉태하시어

서른 해를 시름시름 병을 키우시다가

꿈 같은 노란 산수유 피고

어머니 같은 서럽게 아름다운 너도바람꽃 필 때

어머니 당신은 속절없이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난거지이시며 든부자로 사셨지만

그 많은 자손들의 부귀는

모두 어머니의 속고쟁이와 손끝에서 태어난 것을

어느 누가 모르리까 그러면서도 또 어느 누가 알리이까

눈속에서도 피는 너도바람꽃

어느 누군들 찬란한 5월에 피고 싶지 않으리오만

누군가 차디찬 3월을 그렇게 열어야만 하기에

어머니 당신은 그 짐을 천직인 듯 운명인 듯

마다 않고 지셨습니다

 

이제 너도바람꽃이 지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바람꽃들이 점점 사라져간다지만

어머니 당신이 남기신 큰 뜻은 또 씨 맺고 싹 트고

깊은 산속 응달에서 분명히 그렇게 숨어숨어

또 피고 지며 악착같이 생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바람꽃 어머니

너도바람꽃 어머니

정말로 사랑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어

천년만년 길이길이 행복하소서

 

 


 

 

김종태 시인 / 한밤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카메라의 눈만 번득이는 아이스크림 가게

밤의 우주선 속을 유영하듯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둥둥 떠돌 때

함부로 찢긴 비닐봉지들이 휴지통 옆으로 빈둥거리네

냉장고를 스칠 때 느껴지는 열기를 따라

이곳의 어둠은 길고양이들의 천국이지

동이 터오면 낯선 새가 모터 옆에서 알을 품겠지

 

닫는 시간도, 여는 시간도 없는 이 가게의 밤은

크레파스 통의 뚜껑을 열어놓은 듯이

이미테이션 낙원인 짝퉁 골목의 진열대 같네

인적이 끊긴 쇼핑몰의 쇼윈도우에 비친

끝내 이길 수 없는 인형뽑기 기계의 불빛 같은 출입구에서

우주복을 입은 풍선인형은 알 수 없는 춤을 추네

 

안 보이는 주인을 아이들 몇이 무서워하며

바코드 찍은 후 체크카드를 투입구에 밀어넣을 때

닫힌 유리문으로 새들의 날개가 부딪는 소리가 들리네

서둘수록 벗어나기 힘든 무중력의 놀이터에

열기 머금은 섬광이 오로라처럼 퍼지고

머물다가 더 멀리 나가떨어지는 유랑의 아이러니

 

모든 맛의 빛깔들이 술 취한 미로에 갇혀

태어난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부도심의 밤

기다린 사람과 돌아온 사람이 모여 얼음의 지문을 입김으로 닦으며

새시 틈에 끼인 퀵보드의 바퀴처럼 침묵하는 밤

아무도 노래하지 않고 아무도 토악질하지 않아

포장지에 찍힌 형형색색 활자만이 검은 공기 속으로 휘도는 밤

-계간 『문청』 2025년 여름호 발표

 

 


 

김종태 시인

1971년 경북 김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떠나온 것들의 밤길』 『오각의 방』. 청마문학연구상, 시와표현작품상, 문학의식작품상 수상. 현재 호서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