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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분임 시인 / 골목 증후군 어머니 헝클어진 머리통이 개처럼 끌리던 골목 짓밟힌 바닥을 떠나지 못한 민들레꽃 다 지난 농담인 양 웃고 있었어
어떤 막다른 발이 지나갔는지 엎질러진 화분 뿌리 드러난 파들을 쓸어 담는 마음은 모진 계절을 물려받은 속없는 사태일까, 싶은데 파꽃 같은 노파가 쯧쯧 혀를 보태며 지나갔어
붕괴의 높이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시간을 바지랑대에 널어놓는 집 잘못 찾아든 손님처럼 대문을 기웃거리는 사이
석류나무 그림자에 늘어진 고양이 울음이 들켰어 듬성듬성 빠진 안부에는 흐린 경계의 눈동자 오래된 습관이 가까스로 꼬리를 흔들었어
꽃잎 같은 단란을 띄운 적 없는 우물은 이끼 무성한 소문의 파문을 다문 채 뼈가 드러난 낮달이나 우물거리고 있었어
용서에 등을 기댄 영혼을 향해 악다구니를 퍼붓고 돌아서면 외로움이 더 빨리 자라던 날마다 새로 쓴 백골의 일기로 연명하던, -계간 『시와 징후』 2024년 겨울호 발표
최분임 시인 / 부탁해요, 베이비박스
그런데, 엄마는 뭘 망설이는 걸까요 새벽바람은 골목 입구를 지키고 있고 어둠은 합리적인데 말이죠 분실될 염려 없이 아가, 로 저장될 이름 다른 길이 있을 거라는 고장 난 당부를 새기듯 가로등 깜빡깜빡 눈동자를 듣고 있어요 담벼락 속 저 베이비박스 어둠을 수유하듯 흘리는 불빛에 칭얼댄 적 없는 허기가 맹렬해지네요 늡늡한 품이 될 수 없다는, 인연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다짐이 아프지만 도망치고 싶진 않아요 애틋하지 않은 태도는 벽을 향해 던지던 소주병 방향이 사라진 얼굴에서 배웠을까요 진득한 적 없는 연민과 비루한 학습의 결과물엔 산산조각 난 사내 이름이 담겼어요 일회용 젖병을 찢어발기던 취기의 밤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뒤돌아보지 않으려구요 엄마 등에서 베이비박스로 옮겨지는 순간 무언의 약속 벨을 울린대요 우주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무게감 없는 별처럼 시작을 다친 삶이 둥둥 가볍네요 담뱃불에 그을린 곰 인형은 데려가려고요 앞만 바라보고 걷기에 상처만한 친구가 어디 있겠어요 -계간 『문파』2024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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