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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송이 시인 / 저물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3.
박송이 시인 / 저물녘

박송이 시인 / 저물녘

 

 

나무와 나무 사이 들여다보세요

구르는 자전거에서 내리세요

동전을 잃어버린 마음으로

두리번거리세요

노을 커튼 걸려 있는 집

바람 노래 출렁이는 집

허공 베개 베고 잠드는 집

나무와 나무 사이 들여다보세요

거미가 나방을 아껴 먹고 있어요

뜀박질을 멈추었나요

그물녘이니

한번 물어보는 거에요

우리도 언젠가 저 그물에 걸려들 거잖아요

 

-시집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문을 닫고 열어요>

 

 


 

 

박송이 시인 /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라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연잎이 돋아

다 아는 눈빛으로 봄이여, 세상을

바라보지 마라 뒤돌아 아무도 희망치 마라

어차피 밑지는 사랑을 할 시간

무심결에 무심코 떠난다 할지라도

천둥번개의 마음으로

이제 아픈데 한 군데는 콕 찍어 말 할 나이

잃을 게 없는 가로수는 더디 자란다

 

아주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오래된 동굴로 울며

한나절 한 개 상처를 반반 나눌 수 있을까

너의 발자국과 나의 발을 창에 걸어 놓고

너의 시를 나의 노트에 베껴 쓴다

 

언제쯤 나는 천둥처럼 울 수 있을까

중이 되고 싶다

말하면 중이 될 수 있을까

 

검은 눈물 흘리는 사내들을 사랑한다

 

검은 눈물 흘리는 한 사내를 사랑했었다

아픈 데 모르고 아프던 네 아픔조차 새파랗게 질투하며

내 꿈에 너라는 방 하나를 집짓던 그 거짓 같던,

내 그림의 주인공이 너였던 적 있니?

우리가 오래 입 맞추던

비린내 같았던 그날들이

거짓말처럼 죽지도 않는다

 

너의 눈물은 검고 세상도 온통

족족 검은 눈물이다 눈동자엔 핏발이 논다

주사바늘 냄새가 기어다니는 네 팔뚝으로

피가 맹목적으로 혈관을 돌고 돌아

눈 속이 온통 검은 물이다

 

네가 질질 끌고 간 나침반을 북쪽으로 굽어 놓고

울음이 타들어가며 쇳소리로 너를 우는 대도

너의 짧은 주소를 묻지 않으련다

 

정처 없이 정처 없이

죽을 힘으로, 죽다 살아날 깡으로

 

뱀의 혓바닥으로 너의 꼬리뼈를 핥는다

목울대에 양잿물 붓고 네 팔뚝의 흉터가 새하얘지길

 

기도하던 나의 착한 꿈……

 

아가, 내 길고 아름다운 치마 속으로 놀러 오렴.

 

-웹진 『시인광장』 2011년 6월호

 

 


 

박송이 시인

1981년 전북 순창 출생. 한남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국문과 박사학위 취득.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2017년 한남문인상 젊은작가상. 2013년 대산창작기금 시부문 선정. 시집 <조용한 심장> <나는 입버릇처럼 가게 문을 닫고 열어요>. 동시집 『낙엽 뽀뽀』. 대산창작기금과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