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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건화 시인 / 등을 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3.
김건화 시인 / 등을 품다

김건화 시인 / 등을 품다

들키고 싶지 않던 내 안의 적막

누군가 뒤를 응시할 때

속수무책 들켜버린다

등을 보이는 게 부득이할 때

탐욕의 불룩한 포댓자루 뒤편

내 등은 어떤 웅크림일까

가슴으로 품은 당신 등에서

비운의 모래바람 소리가 들린다

사막을 헤매다 온 슬픔 응어리

낙타의 혹이 만져졌다

근심의 입자들이 켜켜이 쌓여

커다란 티눈처럼 박힌 옹이여서

바로 눕지 못하는 시린 가슴

누군가에게 등을 내어 준다는 것은

그의 슬픔까지도 지고 갈

등짐의 자세가 아니던가

내 짐까지 지고 온 당신이기에

가장 넓은 모래의 품인 내 등을

낙타인 그대에게 내어준다

 

-시집 『손톱의 진화』에서

 

 


 

 

김건화 시인 / 오늘이라는 당신

구불구불 돌아다닌 에움길이

주렴 속으로 걸어 들어와

야금야금 발끝이 갉아 먹은 자리에

통증의 꽃 구절초가 피었어요

앞만 보고 내달리던

스프링복의 질주본능이

낭떠러지를 만났어요

곡선이 아치로 내려앉은 언덕

당신 납작한 신발 뒷굽에

구름스프링을 달아야겠어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던

직립의 무게에 눌리고 눌린 탓에

주춧돌처럼 아픈 발의 비망록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한 번도 씻겨 주지 못한 당신 발에

슬며시 내 발을 포개보아요

 

-시집 『손톱의 진화』에서

 

 


 

김건화 시인

경북 상주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사학과 졸업. 2016년 《시와 경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손톱의 진화> <발랄한 거짓말>. 형상시 문학회 회원, 대구시인협회 회원, 동서문학상, 산림문화공모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