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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철 시인 / 동백 二題 1
법성포에서 가까운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소태산 박중빈이 각고 끝에 도를 깨쳤다는 대각지 비석 뒤켠 봄소식을 알리며 빨갛게 핀 동백꽃은 꽃샘바람 속에서도 요염하더니 이윽고 무르익어가는 봄햇살 속 낙화조차 황홀하게 아랫도리 환히 밝히더니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십여년 전, 꽃행상 하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내게 팔려온 동백꽃은 앰풀로 된 비료약을 화분에 꽂고 해마다 양력설 무렵이면 봄보다도 먼저 아름답게 꽃피우지만 색기가 없어 마침내 색기라고는 없어 거실 한구석 봄을 기다리며 내가 무릎이 시리다.
윤재철 시인 / 동백 二題 2
겨울 한밤중 거실에 혼자 앉아 빨간 꽃 한가득 피워놓은 동백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동백은 말이 없다 동백은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안개 같은 말만 가슴에 가득하다
네게 이르는 길이 어디에서 끊긴 것인지 길이란 애초에 없는 것인지 한밤중 거리를 걸어보지만 나는 단지 걷고 걸을 뿐 네게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시절 더러는 보석처럼 빨갛게 묻어둔 말도 있으련만 돌아보면 길은 늘 거기에서 끝나고 걷고 걸어 새벽시장 생선상자 뜯어 태우는 화톳불 앞에 선다
머리가 하얗게 센 동백을 보았느냐고? 그 동백의 빨간 꽃잎을 보았느냐고? 그래 화톳불에도 네모난 쇼팅 깡통에도 동백은 있고 귀때기가 빨갛게 언 가로등에도 동백은 있지만 아직도 네게 이르는 길은 알지 못하고 나는 안개 같은 말만 가슴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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