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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유자 시인 / 교체 시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3.
김유자 시인 / 교체 시기?

김유자 시인 / 교체 시기​

새벽 세 시, 손흥민은 축구장을 뛰고 있다

오늘은 몸이 무거워 보이네

맥주를 마시고 당신은 소파에 기대어

과자 부서지는 소리만 하게 TV 소리를 줄이고

왼발로 찬 축구공은 골대를 맞고

눈꺼풀에 내려오는 새벽

낚시터엔 아무도 없다

물결에 밀리는 낚싯줄처럼 축구공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잠이 관람석 사람들처럼 우루루 일어서고

내려갔던 눈꺼풀이 다시 올라가자 낚시터에 나타난 당신

낚싯대를 들어 올린다 미끼는 없고 바늘만 반짝인다

반짝이는 슬픔이 그리울 때가 있지 미끼를 다시 끼우고

낚싯줄은 공중을 말아쥔 후

당신의 눈썹 선을 따라가다 물속으로

깊이 깊이

물속으로, 진흙 속으로, 마그마 속으로,

마그마가 굳은 바위 속으로, 바위가 굴러내린 호숫가 장화 속으로,

장화 속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 속으로, 거머리가 빨고 있는 피 속으로,

피의 끈끈한 시간 속으로,

오지 않은 당신 속으로 끌려가다 툭,

끊어져

붕어의 아가미 속을 벗어나

공처럼 떠오르는

낚싯줄은

오후 세 시 삼십 분의 얼굴에 모자를 덮고 잠든 당신 앞에서 다시

고요해지고

그렇지 소리쳤던 당신의 입 밖으로

과자부스러기가 흘러내린다

새벽 네시와

오후 네시의 당신과 당신이 겹쳐져

오늘 지구는 조금 무거워 보이네

아침이 깜박거리다 켜진다

 

 


 

 

김유자 시인 / 슈만의 구두 가게

 

 

- 죽음이 찾아온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마지막 악보가 손수건처럼 흔들리고 있었네

 

발바닥은 눈 뜨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잠든 물고기처럼

늙은 슈만이 악보 속을 맨발로 걸어 다닐 때

물결에 밀려온 구두들

구두에 내 발을 넣어 보네

빨간 구두가 예뻐 검은 구두는 발에 맞지 않아

하이힐 플랫슈즈도 좋지만

물고기 눈동자 같은

잠자리 날개의 구멍들 같은

거미줄에 걸린 태양 같은 당신의 마지막 구두,

신어 보지 않아도 내 발이 콧김을 휭휭 내뿜네

모래밭을 달려가네, 귓속으로 파고드는 태양의 허밍들

수평선을 끌어당기네, 허밍을 터트리는 파도들

날뛰던 내가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을 때

태양이 떨어져 내리는 지붕 위에서 슈만은 톱 악기를 꺼내 드네

활을 긋자, 발과 가락과 톱은 서로 껴안고

서로 떠밀며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떠오르고 있네

 

 


 

김유자 시인

충북 충주 출생.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고백하는 몸들』 『너와 나만 모르는 우리의 세계』. 제18회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