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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왕기 시인 / 문병 다니는 일
요즘 뭐 하며 지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저 문병 다닌다고 한다
병이 온 첫날엔 참이슬 서른 잔으로 안부를 물었고 일주일 되던 날엔 맥주 두 병으로 문안을 했다
달포가 지났을 땐 맥주 서너 병으로 인사를 다녀오고 무슨 병인지 모를 만큼 시일이 지났을 땐 술 석 잔 붓고 말았지만
오랜 병을 구하려는 일도 줄어 가끔 맥주 한 병 사다가 입술에 닿는 거품들을 후루룩 소리내어 들이켜 보기도 한다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 이제 다 지인들 문병 가는 일이다
아파 보이는 사람이나 아파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모두 소주나 막걸리 같은 것을 놓고 앉아서 제 속에 술 털어 넣는일
그저 산책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밥 한 번 먹자는 말도 모르는 병을 서로 조용히 묻자는 이야기다
-『시사사』 2023-여름(114)호
민왕기 시인 / 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내 창문 아래로 우는 사람들이 온다
분노로도 안 되고 자책으로도 안 될 때 그렇다고 죽지도 못할 때 소리치기 좋은 자리를 골라 많은 말을 하고 간다
나는 다 듣는다 본디 내 말이었던 혀가 꼬인 말들을
매번 다른 사람이 오는 데 매번 비숫한 말을 하고 처음엔 화내다가 나중엔 모두 울고 간다
애인은 슬픈 일이라고 하지만 저 말들에 나를 섞어 떠나보내는 거 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 일주일에 한 번은 속으로 같이 소리치곤 한다
생계와 관계와 사랑이 저를 치고 갔을 때 술 취한 마음은 또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이었나
품위를 말하는 사람이 싫고 위선이 보이는 사람이 싫고 오직 저런 난동 위에서 뼈다귀만 남은 마음만이 가여운 구원을 얻는다
울기 편한 귀퉁이에 집을 얻어 꽁꽁 언 겨울에도 눈물 흘리는 사람들 들러가니
여기는 사시사철 울음이 풍성한 곳, 울음이 풍요로워 떠나지 못하는 곳
-『시사사』 2023-여름(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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