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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시인(상주) / 자유분방
찬란을 어떤 방심한 거래에서 등가교환한 것일까 사람을 만나면 가슴보다 등이 먼저 보인다
어느 쪽으로 부등호가 열렸기에 혁명은 이렇게 어깨가 좁아지고 고요해졌을까 후광이 사라진 견갑골은 예외 없이 헐벗은 표정이다
깨지기 쉬운 맹세들 붐비는 거리에서 큰 바람 불면 반등하겠다는 날개의 약속을 믿었을까 자유를 담보물로 맡기고 빌려 온 돌의 날개뼈는 제 자유를 찾아 빈 방을 박차고 날아갔을까 희망의 발등은 수시로 부어오르고 유통기한 지난 노래는 무덤 속에서 목이 쉬는데 혁혁한 화염의 매운 맹세는 일찌감치 시간이 등 돌린 방관에 익숙해져도 되는 것일까
도막난 자유의 등뼈를 저당 잡히고 예각의 사랑을 등 떠밀어 돌려보내고 부패와 발효의 갈림길에서 길 잃은 나의 혁명은 어쩌다 변명과 허명 가득한 변방이 되었을까
침대 밑 뭉친 먼지처럼 밀려다니다 한숨의 심장을 당연한 듯 쓰다듬는 불안의 보드라운 손이 한 무더기 흰 뼈에 멈춘다
얼음거울에 검게 비춰 보이는 분방을 장례도 없이 묻었으니, 산산조각 난 자유의 캄캄한 사각 빗장뼈는 어느 시장이 맞추게 될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2월호 발표
최정란 시인(상주) / 은행나무 두 그루 있는 집
이렇게 끝나는 주소를 손으로 베껴 쓴다 밤새워 쓰고 찢기를 반복하며 쓴 손편지를 부쳐야 할 것 같은 주소,
은행나무 위 까치집이 대를 잇는 집, 해마다 어린 까치들 노란 입 짝짝 벌리며 먹이를 보채는 집, 그 입들 먹이느라 날개에 땀나도록, 어미 아비 까치 부지런히 드나드는 집, 이따금 자잘하게 속 썩이지만 뿌리 튼튼한 두 그루, 아들 딸, 우뚝 발랄 쑥쑥 자라는 집, 주소가 적힌 흰 봉투를 들고,오래 전 잃어버린 골목 묻고 물어 초인종을 누르고 싶은 집, 허공에 누운 얕은 잠 내려두고 한숨 푹 자고 싶은 집, 땅에 발붙인 집, 농밀한 어둠에 뿌리내린 꿈 깊고 깊은 집, 가을이면 노란 잎들 뒤덮어 파라오의 무덤이 되는 집, 태양의 집, 풀벌레들 껍질을 묻고 잠들어 새 봄 풀벌레 한 마리에 잎 하나씩 은행잎으로 부활하는 집,
성Castle, 탑Tower, 궁전Palace, 공원Park으로 추방당한 신귀족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모국어의 주소, 그토록 찾고자 노력하였음에도, 어느새 창궐하는 총독의 언어에 지배당하는 모국어의 주소,
이 언어의 식민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뜬금없이 혼자 외치다 민망해져 나직나직 중얼거리는, 낯익어 낯선 다정한 주소
*베르톨트 브레히트 『후손들에게』 부분-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곧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한 침묵을 내포하므로 거의 범죄나 다름없으니,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2019 봄 사이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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