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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시인 / 세한도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크러진 삶을 쓸어올리며 나는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른 혈죽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나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는 것
박현수 시인 / 위험한 독서
영원히 제자(製字) 원리에 갇히지 않는 문자로 가득한 책 흔들리는 그림자로만 적힌 희미한 구문들이 끝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책 다른 이의 지문이 잔뜩 묻은 서적에 초연하던 예언자, 그의 말처럼 모든 책은 한 페이지의 표지에 불과하리니 허락되지 않은 내용이여 서지학은 얼마나 헛된 학문일 것인가 가장 가까이 있기에 한번 펼쳐 보았다가 나는 결혼했다 한번도 독파된 적이 없는 난해한 서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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