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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규 시인 / 시민시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8.
김진규 시인 / 시민시장

김진규 시인 / 시민시장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날 뜨겁게 끓어오르던 찌개 국물을, 내리던 눈을

포장마차를 감싸던 사람냄새를

살 오른 생선 안주에 쏟아지던 전구 빛을

소주 한 잔에 침이 튀도록 자기 자식을 칭찬하던 날을

길거리 발자국조차 차가운 눈을 담는 예쁜 그릇이 되던

5일마다 오던 그 시장에 경쾌한 번잡함을

 

아버지는 어떤 게 생각나세요

 

아버지가 시켜먹던 돼지껍데기를 지금은 내가 시킨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신발을 털면

저 옆에선 향긋한 기름냄새, 노랗게 익은 통닭에

온 가족이 키득대며

우리는, 우리는 더 커다란 무언가가 될 거라 믿었던 날들이

따르지도 않은 잔에 벌써 넘친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버지였나요

 

아버지가 사들고 오던 통닭을 내가 들고 간다

5일장이 열리는 날

시민시장을 지나, 개나리 핀 한적한 길을 지나

아이야 내 아이야

마주하는 골목 같은 내 아이들아

언제나 다시 돌아와도 좋을 내 아이들아

그렇게 부르고나면

 

돈 몇 푼 쥐어주고 심부름 보냈던 아이는 아버지가 되어

지금의 내가 나에게 잔을 건낸다

그 시절의 連帶여, 家長이여

그리하여 쓴다

 

 


 

 

김진규 시인 / 자이로드롭

 

 

이건 자이로드롭이 아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리 지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소리도 못 지르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단지 가만히 올라가서 가만히 내려올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이걸 타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지만 대답을 알기 전에 안전벨트는 채워진다

입밖으로 나오지 않은 질문은 안전하다

 

종종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올라갔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이유는 각자가 만드는 것

 

이곳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모든 것엔 이유가 없지만, 모든 것엔 이유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올라간다 이유 없이

그리고 다시 내려온다 이유와 함께

 

당신이 나가는 길엔 설문조사가 있다

어땠냐고, 잘 묶여 있던 질문 위에 질문이 던져진다

질문은 당신이 오기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당신은 좋았냐는 질문엔 꼭 인색하고

그렇다

당신은 이유없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린 메모한다

 

개선점: 좋은 이유가 필요하다

 

질문은 이유를 부르고 이유는 질문을 부른다

이건 일종의 실험 같다

하지만 누구도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

 

다시금 기구가 움직인다

이건 자이로드롭이 아니다

 

 


 

김진규 시인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201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시집 『이곳의 날씨는 우리의 기분』. 2017년 경기분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시부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