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명 시인(안동) / 산중의 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3. 1.
이명 시인(안동) / 산중의 달

이명 시인(안동) / 산중의 달

 

 

한밤중 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려

다락으로 올라가 보니

뻐꾸기창에 달이 걸려 달그락거리고 있네요

방으로 들어오려다 창에 걸렸나 봐요

달빛 쏟아져 흥건하고

어둠이 놀라 달아난 자리, 환하네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그러졌다 살아났다 다니는 길로만 다니더니

일상이 지루한가 봐요

그저께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더니

일탈은 아무나 하나요

내친김에 푸르게 기화하고 있어요

 

 


 

 

이명 시인(안동) / 전사의 경전

 

 

고추밭에서 총을 맞았다

혈흔 낭자한 밭이 피로 물들었다

새들이 놀라 날아가고 매미들이 세차게 울어댔다

밀짚모자는 낡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피부는 검게 변하고 현기증에 몸이 비틀거리는데

밭이 나보다 먼저 피를 흘렸다

하안거 끝나고

푸름이 붉음으로 물들어 가는 혁명의 대오에서

윤회의 빛깔일까 붉음은

7번 국도로 말들이 달려가고

전차들이 굉음을 내고 오르내릴 때마다

손바닥만 한 나라는 기울었는데

포탄이 작렬한다

혼절한 내가 간신히 몸을 털고 모자를 고쳐 쓰고

피로 물든 고추들을 수습하는데

숨어 있던 파르티잔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하늘이 물들고

밭은 피 범벅이 되고

눈부시게 빛나는 피의 향연

붉음은 부활의 또 다른 의미는 아닐는지

빛의 총질에 소생하며 출혈은 여름 내내 계속됐다

 

 


 

이명(李溟) 시인(안동)

1952년 경북 안동 출생. 2010년 <문학과 창작> 신인상을 수상을 통해 등단.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 학당』 『벌레문법』 『벽암과 놀다』 『텃골에 와서』 『초병에게』 『산중의 달』. 시선집 『박호순 미장원』 등. 2013년 목포문학상을 수상. 전 한국거래소 최고정보책임자(C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