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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동재 시인 / 동네 어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28.
이동재 시인 / 동네 어른

이동재 시인 / 동네 어른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 어른을 만났다

마스크를 쓴 채 인사를 하니

“누구신가?”

“저 집 사는 사람입니다.”

코앞의 집을 가리켰다

“아, 그렇구먼! 남편은 요즘 일 나가시나?”

“제가 남편입니다.”

“아, 그렇구먼!”

 

며칠 후 아내가 마당 어귀에서 그 어른을 만났다

인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자네 안 사람은 요즘 학교에 안 나가나?”

“예? 제가 안 사람입니다만.”

“아아, 그렇구먼!”

 

며칠 후 동네 산책길에서 그 어른을 다시 만났다

“자네 아버님은 잘 계신가?”

내가 잠시 그 어른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 참, 지난봄에 돌아가셨지!”

“아뇨, 아직 살아계신데요.”

“아, 그렇구먼! 그럼 어머님은?”

“그만그만하십니다.”

“아아, 그렇구먼!”

“남편은 어디 또 멀리 갔나? 요즘 통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제가 그 남편입니다.”

“아아 참, 그렇구먼그렇구먼!”

 

―웹진《공정한시인의사회》2023년 11월호

 

 


 

 

이동재 시인 / 어느 절의 법회

 

 

동지팥죽은 뭐 흙 파서 만들었는 줄 알아

팥죽 한 그릇에 오천원씩 내놔

이제 우리 절도 지금 저 앞에 종루를 새로 지었듯이

일주문도 지어야하고 할 공사가 많아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와서

천 원짜리 한 장 놓고 쪼르르 내려가니 복이 와?

그 다 달아나는 복이야 천만 원씩 내고 빌어 봐

소원이 안 이루어지나 관상이 달라져

왕비도 되고 뭣도 되지

아줌마 어디 백만 원 내고 빈 적 있어

시주는 천 원 하고 복은 백만 원어치 빌고, 에이!

 

'산 속에 성철 스님 계시면 암자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아아 마이크 시험 중'

 

 


 

이동재 시인

1965년 경기 강화 교동도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국문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1998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2007년 <정신과표현>소설 등단. 시집 『민통선 망둥어 낚시』 『세상의 빈집』 『포르노 배우 문상기』 『분단시대의 사소한 너무나 사소한』 『주 다는 남자』 『이런 젠장 이런 것도 시가 되네』 등. 소설집 『파워 인터뷰』. 평론집 『침묵의 시와 소설의 수다』 현재 터키의 에르지예스대학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