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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시인 / 마음속의 집
집을 한 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박눈 내리기 전에 얼른 집을 한 채 지어 이 비좁고 추운 방에서 새집으로 이삿짐을 옮겨야겠다고
집은 흙과 나무와 짚으로 된 집이었으면 합니다 딱따구리 파다만 구멍이 그대로 남았거나 옹이가 무늬처럼 박힌 통나무집을 상상했지요 깔끔한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헛간도 한 채 새로 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하루 종일 새들이 지저귀다가는 대숲이 있었으면 합니다
책 읽기가 싫증이 나면 대발 길을 걸어 소나무가 있는 오솔길을 지나 동그란 무덤들이 놓여 있는 산정(山頂)으로 오를 수 있게. 마른솔잎이 푹푹석 깔려 있다면 절로 시는 흥얼거려지는 것이겠지요
탱자나무 울타리를 빙 둘러쳐서 해마다 탱자꽃이 피면 내가 좋아했던 한 여자, 기막혔던 연애를 올리며 화로처럼 귓불까지 달아올라도 부끄럽지 않을 텐데요 그런 곳에서 나도 내 이름으로 된 문패를 걷고 찾아오는 사람 하나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유자차를 끓여내놓겠습니다
방으로 들어올 때는 댓돌 위에 가지런히 신발 돌려놓고 시 쓰는 이야기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참입니다 작년보다 올해는 더 살기 어려워졌다는데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어떻게 살 작정이냐고
목화송이처럼 또 함박눈이 내릴 때면 그런 이야기들은 다 눈 속에 파묻어 두고 나도 이 세상 어딘가 단 한사람 시린 등이라도 녹일 수 있는 모닥불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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