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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문연 시인 / 소리의 집
내 몸은 소리의 거처이며 통로였다
언제부턴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알 수 없는 이명들이 몸을 흘러나간다
살아온 내력이 기록된 집 내 생의 테두리를 맴돌던 채록採錄의 지문이 조금씩 지워져간다
소리 안에 나를 세워두고 소리 밖으로 그가 빠져나갔다
달콤한 소리 작은 소리에 솔깃한 두 귀
쓴말을 싫어하더니, 자주 소리를 놓치고 말았다.
곽문연 시인 / 동백꽃 라디오
형이 조립해 준 라디오 이불을 들추면 기억의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앞과 뒤를 잇대어 완성한 밑그림 내 꿈은 어둠과 소리로 조립되고 푸른 잎이 돋던 시절
귓속을 드나들던 먼 나라 이야기 이어폰을 꽂고 소리로 허기를 채우는 밤, 호롱불 심지에 가물가물 잠을 켜두고 지지직 소리를 베고 잠들었다
어긋난 주파수를 찾아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 흩어지던 소리의 파편들
꽃 지는 소리에 뒤적이던 밤 오래된 라디오에서 동백아가씨의 구슬픈 목소리가 걸어나왔다
생각하면 꽃 진 자리처럼 멀고 아득한 일,
꿈 밖에서 나를 부르는 형의 목소리는 동백꽃보다 붉었다.
-시집 <단단한 침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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