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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서 시인 / 흔적
그때, 나는 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디 탕, 탕, 탕, 난데없이 오그라든 몸이 냅다 YMCA 뒷골목으로 뛰었는디 전일빌딩 쪽으로 헬리꼽따가 날아갔당께 고도 믿기지 않는디 아무헌티도 말 안 했제, 못 했제 잊어뿔자 잘못 본 것이여 잘못 들은 것이랑께 저 소리! 총알이 정수리를 향하던 꿈을 자주 꿨어라우 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는디 헛것 같은 세월이 시방……37년이락 했소?
-『경향신문/詩想과 세상』 2024.05.19.
고영서 시인 / 홍천강 다슬기
나는 목격자입니다
돌바닥에 붙어 밤을 기다리다가 날 밝으면 하루 더 연명하려 했을 뿐 밤보다 더 검은 음모는 몰랐습니다 내가 바닥 생활을 하다가 목격자가 된 것에 대해 제발 입을 다물어 주시길 바랍니다 돈 욕심에 눈먼 남자의 욕망이 아내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목을 조르고 물에 빠뜨리고 죽이고 그녀의 사망 보험금을 자기 친딸에게 준 것도 나는 몰랐습니다 그날 밤 내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된다면 나를 모른 척해주세요 그날 밤 내가 얼마나 간절히 하늘과 강을 바꾸고 싶었을지 짐작이 된다면 나를 모른 척해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의붓아빠에 의해 엄마가 죽었음을 알려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눈도 없이, 발도, 입도 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딸 꿈에 나타나 엄마가 떠밀려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딸은 바닥을 기는 나보다 똑똑하고 영리했으니까요
나는 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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