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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하경 시인 / 달의 법칙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3. 2.
김하경 시인 / 달의 법칙

김하경 시인 / 달의 법칙

 

 

아버지는 상의 용사였다

6.25 참전 때 철원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다

댕강 떨어져나간 한쪽 다리

오남매 배는 늘 허전하게 채워졌고

의족 끼운 아버지 한쪽 엉덩이가 보름달처럼 부풀었다

 

왼쪽 발바닥이 평발인 나도

오른쪽 발바닥에 힘을 주며 길을 걷는다

물집이 생길 때마다

왼쪽 발은 땅 딛기가 거북하였다

평평했던 발바닥 굳은살은 튕겨 나오면서

뼛속에 숨은 삶의 걸음걸이도 뒤틀렸다

 

절뚝절뚝 뒤틀릴 때 오른쪽 엉덩이가 왼쪽으로 낮아진다

 

발 한번 담구지 못한 의족

아버지 다리를 닮은 강줄기 따라

피라미가 지나다니는 물길에 어머니와 나란히 뿌리셨다

 

막 목욕을 끝낸 딸아이 발처럼

신지 못한 하얀 신발 아래

보름달 밝음까지 낮아진 밤, 왼쪽 시간이 출렁출렁 흐른다

 

무덤 속 어둠보다 밝은 강 속

집으로 귀가한 보름달의 한쪽 다리는 언제나 절뚝거렸다

살색 의족이 검버섯처럼 변한 시간

가운데를 비웠던 어머니는

아버지 의족을 살짝 벗기시는지

바람이 흔드는 물결을 들추는 물고기가

푸드득 푸드득 꼬리를 흔들며

강물 속 안부를 전한다

 

-시집 <거미의 전술> 고요아침

 

 


 

 

김하경 시인 / 숨은 도시

 

 

컬러링이 울린다

주고받은 문자는 만남의 통로

내가 포착되었다

“카톡 왔어,”

 

간간히 웃음을 숨겨놓은 사내가

동굴 속 박쥐처럼 휘파람 불며 앉아있다

패턴장치 설치된 비밀 접속

진동벨로 저장한 그는

눈 마주칠 때마다 액정에도 온기가 감돈다

귀가 먹어가는 오십 나이

거울 앞에 마스카라 올리며 마음의 시간을 당긴다

틀 속에 갇힌 심장 소리가 더 요란하다

벨 소리는 만남의 신호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된 통로

해가 뜨고 바람이 이는 비밀의 장소

 

핸드폰 속에 숨은 도시

사내 하나 주운 밤

나는 날마다 구속된다

 

 


 

김하경 시인 (1964~2016)

1963년 전북 익산 출생. 신구대학교 졸업. 2012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2014년 <공중그네>로 전국 계간지 우수작품상 수상. 2015년 가을 첫 시집인 <거미의 전술>을 냈으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 유고 시집이 됨. 전 양산 성모병원 원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