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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온윤 시인 / 반려식물
아침이 되면 나와 가장 가까운 육체부터 찾는다
누워 있던 자리에서 더듬더듬 손을 뻗어보면 축축한 목덜미가 만져진다 간밤의 꿈을 이불 위에 쏟아버린 나의 가여운 반쪽 떨지 마 네겐 빛이 조금 모자랄 뿐이야
몸을 일으켜 세워 기지개를 시킨다 찬물을 한모금 먹이고 잘 마른 새 옷을 입힌다 창을 열어 오늘의 날씨를 가르쳐준다 이 모든 게 지겹도록 반복되지만
세상의 모든 반쪽은 나머지 절반마저 제 것인 줄 안다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실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그것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멀뚱멀뚱 나를 방금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 때면 화가 나다가도 하얀 눈밭 같은 눈동자가 무구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네 속을 열어보고 싶어 그 안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 싶어 쌀알처럼 무수한 빛으로 가득 채워주고 싶어 네가 고개를 들 때마다 들리겠지 물결에 부딪는 자갈 소리처럼
나의 반쪽은 나의 반쪽을 미워할 줄 모르니까
나는 나를 모르는 내가 시들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밤이 되면 밤에게는 그림자를 돌려주고 육체에게는 오늘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해줄 것이다
- 조온윤 시집 『햇볓 쬐기』 중에서
조온윤 시인 / 어떤 일이 일어난 미래
계절이 사라졌다는 분기점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미래에 있었어 계절이 있었다면 벌어졌을 황당한 일들을 생각하며
서울 한복판이 물에 잠길 리가 없잖아 숭례문이 불에 타 사라질 리가 없잖아
비 젖은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작은 개를 줍는 미래와 작은 개를 줍지 않는 미래로 갈라지는 시간 앞에서
작은 개와 함께였다면, 나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왔을 텅 빈 골목을 바라보고 있었어
반려의 존재들이 요정이라 불리는 미래에서는 인간이 요정을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누군가 버려진 상자로 손을 뻗는 순간 시간의 정수리에서는 또 다른 미래가 돋아나고 두 삶은 아기일 적에 헤어진 쌍둥이처럼 제각각 살아가겠지
나는 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겨 빗물이 눈처럼 느리게 내리고 개에게는 날개가 달렸다는 이상한 미래에 다녀오곤 해
모르는 개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드는 길거리에서 숭례문이 불타고 때로 강물이 넘쳐흐르는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세계에서
-〈웹진_ 같이 가는 기분〉 202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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