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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영 시인 / 지난날의 장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3. 2.
이기영 시인 / 지난날의 장미

이기영 시인 / 지난날의 장미

 

 

쇄골이 살짝, 드러난 붉은 장미

 

손끝과 발끝에 힘을 준 채 코끝을 집중시키면

발가락의 진동이 머리끝까지 요동치다가

입술에 닿게 되지

아찔하게,

그때 흔들리는 건 반쯤 잠긴 현기증이 아닐까

잠시 의심하는 사이

 

이건 은유일까, 다시

어둠이 더 깊은 어둠을 업고

붉은 꽃잎은 더 붉은 꽃잎을 얹고

향기가 더 짙은 향기를 안고

 

긴 목으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距離)에서

가시는 왜 더 맹랑해질까

 

다시

머나먼 이름, 지난날의 장미

 

 


 

 

이기영 시인 / 아픈 발을 끌며 진창을 뛰어가네

 

 

비가 온다

붉은 소리다

 

칠흑 안으로 손을 넣고

점자를 읽듯

쓰다듬어 본다

 

부서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저 소리를

놀라서 달아나는 저,

 

밤새도록 아파서 끙끙 앓는

비통한 발들이

 

창 밖에 흥건하다

 

 


 

이기영 시인

2013년 《열린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몸으로 우는 것들은 원을 그린다』. 디카시집 『인생』. 2016년 전국계간지우수작품상 수상. 2018년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