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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환 시인 / 봄눈 때 잊은 눈이 중부 지방을 덮쳤다 기습적인 공격에 나무들 비명 지르고 밥 쪽으로 난 길고양이 길도 지워졌다 압사하기 직전인 꽃망울 옆 눈 속 헤집던 까치가 죽은 나뭇가지 물고 날아간다 네 시간째 갇혔다 뉴스가 뜨고 누구는 밤중 되어 집 가까이 왔다 했다 폭설이 목적지를 같게 한 걸까 길 위 행렬들이 불수의근처럼 온통 집 쪽으로 길을 낸다
하긴 수없는 길은 집으로 휘어들고 집은 다시 밖으로 수많은 길 만들었다 험해도 따뜻해도 기억은 길이다 길이 사라져도 집은 녹지 않을 것이다
울금빛으로 데워 놓은 방들이 꽃망울 같이 맺히는 곳 바라보다 눈 쓸어 조그맣게 밥 길을 낸다 얼마 있으면 쌓인 눈 위에 폭폭, 발자국들이 살구꽃처럼 돋아나겠다
-시집 <장미와 햇볕>에서
강유환 시인 / 돌에게
돌은 꽃도 새도 사람인 적도 있었다 잠자는 돌 가슴에 카네이션을 얹는다 움찔하는 돌 오늘은 여기까지다 돌 콧줄에 묽은 주스를 붓고 귀 댄다 하품하는 돌 생각날까 오늘은 여기까지다
피어나는 돌 날갯짓하는 돌 마루청 닦는 돌 밥 안치는 돌 비명지르는 돌 제발 죽여달라는 돌 퉁퉁 부어 알아볼 수 없는 돌 말을 잃은 돌 돌 발톱을 다듬는다 명상하는 돌 기억을 붓는다 갱각날까 숲에 옮겨심기 못 한 돌 구르지 못한 돌 바스러지는 돌
톡톡 말을 떨어뜨린다 들었을까 힐스테이트포레 거실에 도착했을 대 언제 따라왔을까 돌이 구르기 시작한다 온몸 굴러다닌다 내가 돌이 될 때가지 구를 것이다 여기까지다
-시집 <장미와 햇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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