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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유환 시인 / 봄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3. 2.
강유환 시인 / 봄눈

강유환 시인 / 봄눈

때 잊은 눈이 중부 지방을 덮쳤다

기습적인 공격에 나무들 비명 지르고

밥 쪽으로 난 길고양이 길도 지워졌다

압사하기 직전인 꽃망울 옆

눈 속 헤집던 까치가

죽은 나뭇가지 물고 날아간다

네 시간째 갇혔다 뉴스가 뜨고

누구는 밤중 되어 집 가까이 왔다 했다

폭설이 목적지를 같게 한 걸까

길 위 행렬들이 불수의근처럼

온통 집 쪽으로 길을 낸다

 

하긴 수없는 길은 집으로 휘어들고

집은 다시 밖으로 수많은 길 만들었다

험해도 따뜻해도 기억은 길이다

길이 사라져도 집은 녹지 않을 것이다

 

울금빛으로 데워 놓은 방들이

꽃망울 같이 맺히는 곳 바라보다

눈 쓸어 조그맣게 밥 길을 낸다

얼마 있으면 쌓인 눈 위에 폭폭,

발자국들이 살구꽃처럼 돋아나겠다

 

-시집 <장미와 햇볕>에서

 

 


 

 

강유환 시인 / 돌에게

 

 

 돌은 꽃도 새도 사람인 적도 있었다

 잠자는 돌 가슴에 카네이션을 얹는다 움찔하는 돌 오늘은 여기까지다 돌 콧줄에 묽은 주스를 붓고 귀 댄다 하품하는 돌 생각날까 오늘은 여기까지다

 

 피어나는 돌 날갯짓하는 돌 마루청 닦는 돌 밥 안치는 돌 비명지르는 돌 제발 죽여달라는 돌 퉁퉁 부어 알아볼 수 없는 돌 말을 잃은 돌

 돌 발톱을 다듬는다 명상하는 돌 기억을 붓는다 갱각날까 숲에 옮겨심기 못 한 돌 구르지 못한 돌 바스러지는 돌

 

 톡톡 말을 떨어뜨린다 들었을까 힐스테이트포레 거실에 도착했을 대 언제 따라왔을까 돌이 구르기 시작한다 온몸 굴러다닌다 내가 돌이 될 때가지 구를 것이다 여기까지다

 

-시집 <장미와 햇볕>에서

 

 


 

강유환 시인

1961년 전남 무안 출생. 전남대학교 국어교육과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2000년 계간《시안》 가을호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꽃, 흰빛 입들』 『고삐 너머』, 논저 『존재, 그 황홀한 부패』 『매혹과 크레바스의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