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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교회사327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9) 요한네스 링겔바흐의 '1527년의 로마 약탈'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9) 요한네스 링겔바흐의 ‘1527년의 로마 약탈’ 제후국의 로마 침략, 가톨릭 쇄신 운동의 단초가 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4.11 발행 [1608호] 메디치 가문 출신의 레오 10세 교황에 이어 선출된 하드리아노 6세 교황(재위 1522~1523)은 루뱅대학교 출신의 네덜란드인이었다. 새 교황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카를 5세가 어렸을 때, 그의 개인 교수를 했고,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고문이자 법정 대리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교황이 된 지 1년 8개월 만에 사망했다. 하드리아노 6세 교황의 뒤를 이어 레오 10세의 사촌 동생 줄리오가 클레멘스 7세(재위 1523~1534)라는 이름으로 교황직에 올랐다. 클레멘스 .. 2021. 4. 13.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조선 팔도를 땀으로 축성한 사제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조선 팔도를 땀으로 축성한 사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조선인 두 번째로 사제품을 받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1821-1861) 신부는 사목자의 생활과 성덕의 전형으로 추앙받으며 꾸준한 열성과 거룩한 땀을 통해 복음 선교에 일생을 바친 백색 순교자로 오늘날까지 신자들의 가슴 속에 이어져 오고 있다. 1. 생애 : 출생의 배경과 하느님의 부르심 최양업은 부친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1805-1839, 1984년 시성)과 모친 이성례(李聖禮, 마리아, 1801-1840, 2014년 시복) 사이에서 1821년 3월 1일, 6형제의 장남으로 충청도 홍주의 다락골(현 충남 청양 화성면 농암리 누곡)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본관은 경주이고, 아명은 정구(鼎九)이.. 2021. 4. 12.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8)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8) 파울 투만의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베드로 대성전 건립 자금 뒷거래가 촉발한 종교 개혁의 바람 가톨릭평화신문 2021.04.04 발행 [1607호] ▲ 파울 투만,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1872년, 바르트부르크성 박물관, 독일 튀링겐. 율리오 2세 교황의 뒤를 이은 사람은 레오 10세(재위 1513~1521)였다. 메디치 가문 로렌조 마니피코의 셋째 아들 조반니가 제217대 교황이 된 것이다. 마니피코의 똑똑한 아들로 정평이 나 있던 조반니는 13살에 인노첸시오 8세 교황으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친이 사망한 이후 가문의 쇠퇴와 함께 로마를 떠나 유럽을 돌아다녔다. 힘든 시절.. 2021. 4. 8.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5. 충주의 사도 이기연 형제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5. 충주의 사도 이기연 형제와 충주 교회 충주의 사도 이기연, 북도로 귀양 가서도 천주교 씨앗 퍼뜨리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4.04 발행 [1607호] ▲ 충주목의 관아골이 있던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에 건립된 천주교 ‘순교자 현양비’. 충주에서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장소는 충주시 봉방동의 옛 무학당 주변(현 충주우체국 부지)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충주의 사도 이기연과 이부춘·이석중 부자, 권아기련 등이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충주의 최고 명문 가문 조선 교회 출범기의 지역 교회사에서 그 실체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바로 ‘충주 교회’이다. 충주 교회에는 충주의 사도 이기연(李箕延, 1739~1801)과 그의 아우 이최연(李最延,.. 2021. 4. 5.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 빛과 말씀이 중국으로!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 빛과 말씀이 중국으로! 바야흐로 대항해시대, 선교사들도 동양으로… 가톨릭신문 2021-04-04 [제3238호, 11면] 원나라 때 최초 전래됐지만 제국 망하며 가톨릭도 소멸 대항해시대 절정에 이르러 선교관할권·예수회 창설로 명나라 말엽 본격 전교 시작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중국 선교 위한 씨앗 뿌려 가톨릭신문은 아시아천주교사연구회(회장 신의식)로부터 ‘중국교회 역사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받아 이번 호부터 연말까지 총 20회를 연재할 예정이다. ‘중국교회 역사이야기’는 한국교회 역사를 보다 풍성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 경교-중국에 처음 선보인 그리스도교 중국에 처음 전래된 그리스도교는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다. 콘스탄티노플 .. 2021. 4. 2.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4. 사학(邪學)이 아니고 정학(正學)입니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4. 사학(邪學)이 아니고 정학(正學)입니다 “경전의 가르침이 서학과 한 치 어긋남이 없는데 어찌 사학인가” 가톨릭평화신문 2021.03.28 발행 [1606호] 유가 경전으로 사학을 설명하다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801년 2월 의금부로 잡혀갔을 때 나이가 64세였다. 「추안급국안」에 2월 14일과 2월 15일, 「추국일기(推鞫日記)」에 2월 20일의 공초 기록이 남아있다. 이 기록 속에 홍교만이 심문관과 서학이 사학(邪學)이냐 정학(正學)이냐를 두고 벌인 논쟁이 나온다. 2월 14일에 심문관이 “네가 이미 이 책을 보아 이 학문이 바른지 삿된지를 변별할 수 있을 테니, 네 견해에 따라 사실대로 대답하라”고 하자, 홍교만이 대답했다. “그 학문을 삿되다.. 2021. 3. 27.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3. 홍교만·홍인 부자와 포천 교회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3. 홍교만·홍인 부자와 포천 교회 포천의 사도 홍교만, “예수의 학문이 정학이다” 당당하게 선언 가톨릭평화신문 2021.03.21 발행 [1605호] 홍교만 집안의 신앙 홍교만(洪敎萬, 1738~1801)은 1801년 2월 26일, 정약종, 최창현, 최필공, 홍낙민, 이승훈과 한 날 목이 잘려 순교했다. 정약용은 「추안급국안」에 실린 1801년 2월 13일 자 의금부 공초에서 “포천의 홍교만 또한 유명하고, 제 형과는 친사돈 간이며, 홍주만의 아우입니다”라고 진술했다. 함께 형이 집행된 인물들의 면면과 정약용의 진술로 당시 홍교만의 교계 내 위상이 드러난다. 아들 홍인(洪, 1758~1801)과 서종제(庶從弟) 홍익만(洪翼萬, ?~1801)도 신유박해 때 순교.. 2021. 3. 22.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2. 집 나가는 아우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2. 집 나가는 아우들 홍교만과 이기연, 제사 지내지 않으려고 형이 통곡해도 가출 가톨릭평화신문 2021.03.14 발행 [1604호] ▲ 복자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사돈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책 상자를 받아 자신의 집에 숨겨 두었다.(탁희성 화백 그림) 홍교만은 서울에서 지내다가도 부친의 기일이 되면 제사를 피해 포천 자기 집으로 슬며시 돌아가 자리를 피하곤 했다. 제사를 지내느니 혈연을 끊겠다 초기 천주교 신자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제사 문제였다. 특별히 1790년 구베아 주교의 사목교서가 조선 교회로 전해진 뒤로 더 했다. 윤지충의 막내아우 윤지헌(尹持憲)은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전라도 고산(高山)의 이존창의 집에 여러 날 .. 2021. 3. 15.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1. 별라산의 별난 사람 홍지영·강완숙 내외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1. 별라산의 별난 사람 홍지영·강완숙 내외 강완숙 남편 홍지영은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의 7촌 서조카 가톨릭평화신문 2021.03.07 발행 [1603호] 홍지영의 별라산과 원백돌의 응정리 박종악이 정조에게 보낸 비밀 공문을 모은 「수기」는 1790년 진산 사건 이후 충청도 초기 교회의 생생한 현장 정보를 중계한다. 탄압 대상의 동향과 활동 정보 및 관련자 색출에 대한 보고서라서 그렇다. 「수기」에서 특별히 지속적 주목 대상이 된 인물 중 하나가 덕산 별라산(別羅山)의 홍지영이다. 1791년 12월 2일에 정조에게 보낸 비밀 공문에서 박종악은 이 지역의 호법(護法)하는 무리로 덕산 별라산(別羅山)의 홍지영(洪芝英)과 홍주 응정리(鷹井里)의 원백돌(元白乭)을 .. 2021. 3. 10.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37) 오라스 베르네의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37) 오라스 베르네의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전 설계를 명하는 율리오 2세 교황’ 걸작 성 베드로 대성전을 만든 ‘르네상스 주역들’ 한 자리에 가톨릭평화신문 2021.03.07 발행 [1603호] ▲ 오라스 베르네,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설계를 명하는 율리오 2세 교황’, 1827년, 루브르, 프랑스 파리. 권력가 율리오 2세 교황과 어지러운 정세 말 많고 탈 많은 알렉산데르 6세 교황(보르자)의 뒤를 이은 사람은 줄리아노 델라 로베로 곧 율리오 2세 교황(Giulio II, 재임 1503~1513)이었다. 율리오 2세는 선임 알렉산데르 6세를 몹시 싫어했다. 공공연하게 “나는 보르자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 2021. 3. 9.
[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 종교 개혁의 불씨 남긴 두 인물 가톨릭평화신문 2021.02.28 발행 [1602호] ▲ 줄리오 바르젤리니,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1897년), 브라스키 궁, 로마 박물관 소장. 1492년은 인류 역사는 물론 교회사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우선, 스페인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이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간 스페인 내(內)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1월 2일) 이사벨라와 페르난도 부부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 군주로 지위를 확립했고, 같은 해에 로드리고 보르자가 알렉산데르 6세 교황(재임 1492~150.. 2021. 2. 28.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0. 밀고자 한영익과 다산 정약용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0. 밀고자 한영익과 다산 정약용 한영익이 밀고한 주문모 신부, 정약용이 먼저 달려가 피신시키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2.28 발행 [1602호] ▲ 다산이 해배된 지 2년 뒤인 1821년 1월 24일에 다산초당 주인 윤문거에게 보낸 편지로, 어린 딸(稚女)을 하인 편에 업고 올라오게 해서 사창동에 사는 사제(舍弟) 정약횡의 집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내용의 친필 편지다. 개인 소장. 짧은 방심 1794년 11월 2일, 천신만고 끝에 주문모 신부를 모신 조선 천주교회에 기쁨이 넘쳤다. 신자들은 이전에 가성직 신부에게서 받은 영세 대신 진짜 세례와 성사를 받겠다며 줄을 섰다. 막상 신부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당시 4000명에 달하던 교우의 .. 2021.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