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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교회사327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8. 명도회의 설립 목적과 운영 방식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8. 명도회의 설립 목적과 운영 방식 입회 방식과 활동 내용 모두 오늘날 레지오 마리애와 같아 가톨릭평화신문 2021.07.04 발행 [1620호] 명도회규와 설립 목적 명도회는 왜 설립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을까? 「사학징의」의 「요화사서소화기(妖畵邪書燒火記)」 중 윤현의 집 구들장 밑에서 나온 책자 목록 중에 「명도회규(明道會規)」 한문본 1책이 있다. 또 한신애의 집에서 압수한 사학 서적 목록 중에도 「셩모시ㅎㆎ명도희규인(聖母始胎明道會規引)」이란 책이 보인다. 중국의 명도회규는 오늘날 대만 보인대학(輔仁大學) 서회신학원(徐匯神學院)에 소장된 「입성모시태명도회목훈(立聖母始胎明道會牧訓)」이 저본이다. 뒤에서 살피겠지만 ‘신공(神工)’, ‘보명(報名)’,.. 2021. 7. 3.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5) 환자를 구하는 성 가밀로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5) 피에르 쉬블레라의 ‘환자를 구하는 성 가밀로’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도 힘있게 병자를 둘러업은 성자 가톨릭평화신문 2021.07.04 발행 [1620호] 트렌토 공의회로 교회가 세상 안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노선과 방향이 확정되자, 교회의 모든 지체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위에선 교회 행정에서부터 재정비가 시작되었고, 아래서는 인문주의,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많은 성인이 나와 ‘성인들의 시대’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1500년대 초가 혼돈의 시대였다면, 1500년대 후반은 ‘성인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성인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성인이 나왔다. 앞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성 예로니모 에밀리아니, 성녀 .. 2021. 7. 2.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7. 명도회의 성격과 설립 시점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7. 명도회의 성격과 설립 시점 국가 탄압에 맞서 1800년 4월 조직화된 신심 단체 첫 설립 가톨릭평화신문 2021.06.27 발행 [1619호] 중간 세포 차단책과 플랜 B 1795년 6월 주문모 실포 사건 이후 신부는 전면에 나서기가 어려웠다. 신부를 잡기 위해 1798년과 1799년 충청도 교회에 박해의 광풍이 몰아쳤고, 밀정 조화진의 암약으로 충청도 교회는 궤멸 직전 상황에 몰렸다. 1800년 4월에는 양근 교회를 표적으로 한 탄압까지 시작되어, 핵심 인물들이 잇달아 검거되자, 1800년 5월에 정약종이 검거를 피해 급거 상경해야 했을 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 1800년 당시의 주문모 신부는 국가의 지속적 탄압으로 와해 상태에 놓인 신자 조직의 재건과 .. 2021. 6. 26.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7) 전통과 신학의 100년 다툼 - 중국의례논쟁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7) 전통과 신학의 100년 다툼 - 중국의례논쟁 제사 허용 여부 따라 전교 활동도 ‘갈팡질팡’ 가톨릭신문 2021-06-27 [제3251호, 18면] 효경의 표현으로 제사 허용한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와 달리 도미니코회 등 다른 수도회는 미신적 종교의례로 금지 요청 ‘제사 금지’ 교회 결정에 따라 선교사 추방되고 선교 금지돼 홍표(紅票, Red Manifesto). 홍표를 지참하고 홍표에 기록된 정보를 가져오는 서양인은 신뢰하겠다며 1716년 9월 17일 광주에서 만주어, 중국어, 라틴어로 발행해 서양인에게 발급한 표. 중국의례논쟁(中國儀禮論爭, Controversia de ritibus)은 예수회와 예수회를 제외한 여러 수도회(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회, 파리 외.. 2021. 6. 25.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6. 무지개 다리는 끊기고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6. 무지개 다리는 끊기고 이승훈이 아버지와 친척들 앞에서 읊은 ‘벽이시’에 담긴 뜻은 가톨릭평화신문 2021.06.20 발행 [1618호] 저문 골짝의 무지개 다리 1785년 3월, 을사추조 적발 직후 이동욱은 집안 친척들을 다 모아놓고 아들 이승훈이 앉은 자리에서 한 해 전 연행에서 구해온 서학 서적을 마당에 쌓은 뒤 불을 질렀다. 이어 서사(西士)에게서 선물로 받아온 각종 의기(儀器)들도 모두 박살 내버렸다. 한때는 자랑과 긍지의 표징이었던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친척들 앞에서 앞서 살핀 「벽이문」을 지어 낭독하게 하고 신앙을 버릴 것을 맹세하게 했다. 서학책이 불타 재가 되자 이승훈은 다시 ‘벽이시’ 즉 이단을 배척하는 시 한 수를 지었다.. 2021. 6. 24.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참된 목자로서의 영성적 모범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최양업 신부는 박해시기의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제적 소명을 헌신적으로 수행했다. 우리는 서한들을 통해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특히 사제들에게 영성적 삶의 모범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최양업 신부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분과 온전히 일치한 내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하느님과 맺은 친교는 주님 섭리와 자비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었으며, 박해로 인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신자들과 함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목자로서의 사랑을 가지고 사목 활동을 해나갔다. 또한 최양업 신부는 박.. 2021. 6. 17.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선교 영성 (3) 증거의 삶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통한 증거는 선교의 참된 효과를 거두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복음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마음의 문을 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에게는 복음의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증거의 삶이 요구된다. 최양업 신부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할 당시 조선 땅의 외국인 성직자들은 박해로 인해 사도적 활동에 많은 제약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는 방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2021. 6. 16.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5. 이승훈의 「벽이문」과 「유혹문」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5. 이승훈의 「벽이문(闢異文)」과 「유혹문((牖惑文)」 한국의 첫 영세자 이승훈, 천당지옥설·위천주론 내세워 배교 선언 가톨릭평화신문 2021.06.13 발행 [1617호] 「벽이문」과 천당지옥설 이승훈은 교회사에서 늘 뜨거운 감자였다. 그는 평생 배교 행동을 반복했고, 이를 확인하는 「벽이문(闢異文)」과 「벽이시(闢異詩)」, 그리고 「유혹문((牖惑文)」을 남겼다. 이 글의 진의를 두고도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글에서는 이승훈의 「벽이문」과 「유혹문」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승훈은 1785년 3월, 을사추조 적발 직후 배교를 선언하면서 전향서인 「벽이문」과 「벽이시」를 지었다고 1791년 11월 8일 의금부 공초에서 밝힌 바 있다. 이승훈의 공초 기록은.. 2021. 6. 13.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4)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4) 루카 조르다노의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 16세기 교회 재건과 개혁 이끌며 고군분투한 두 성인 가톨릭평화신문 2021.06.13 발행 [1617호] 1527년 로마 약탈은 목자가 정신줄을 놓으면 양 떼는 늑대들의 공격을 받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달리 말하겠지만, 처참한 상황을 겪은 로마 처지에서는 그렇게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바오로 3세 교황(재임 1534~1549)의 등장과 트렌토(트리엔트) 공의회 개최, 뒤이은 율리오 3세, 바오로 4세, 비오 4세 교황을 거치면서 교회의 본격적인 개혁이 진행되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트렌토 공의회는 가톨릭 신앙과 교회의 규율에서 다른 어떤 공의회보다도 폭넓고 깊.. 2021. 6. 12.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6) 중국 황제와 서양선교사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6) 중국 황제와 서양선교사 ‘황제 천주교 귀의’ 끝내 이루지 못한 전교 목표 가톨릭신문 2021-06-13 [제3249호, 18면] 아시아 각국 천주교 전파에 ‘중국 황제의 세례’는 큰 의미 선교사들 각별한 노력 기울여 황제와 개인적인 친분 나누고 과학·예술 교류에 힘썼지만 목표 실현에는 현실적 한계 그리스도교를 중국에 ‘천주교’로 뿌리내리게 한 예수회 선교단은 전교활동의 전제를 그 사회에 융합, 동화로 인식하며 철저한 적응주의로 중국 개교(改敎)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선교사들은 중국 사대부(士大夫) 지식층에게 서양 학문과 기술을 소개, 전달함으로써 친교를 맺고 전교했다. 전교의 궁극 목표는 바로 황제였다. ■ 중국 전교 최종 목표-황제의 세례 예수회는 궁극적으로는 황제를.. 2021. 6. 11.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교 영성 (2) 기도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기도는 교회의 복음 선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이 복음을 기쁘게 선포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최양업 신부는 조선에서 선교가 이루어지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하느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조선의 선교를 위해 기도가 필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51년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천주교에 입교하고 싶어도 박해로 인해 선뜻 신앙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매우 아쉬워하며 이렇게 썼다. “이들에게 신앙의 자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틀림없이 기뻐 용약하면서 그리스도의 양 무리 안에 들어.. 2021. 6. 10.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4. '월락재천, 수상지진'론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4.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상지진(水上池盡)’론 이승훈의 ‘月落在天 水上池盡’, 출처 모호하고 전승 경위 불투명 가톨릭평화신문 2021.06.06 발행 [1616호] 달은 져도 하늘에 있지만 이승훈의 사세시(辭世詩)는 1801년 2월 27일 서소문 형장에서 목이 잘리기 직전 자신의 심회를 토로했다는 두 구절, “월락재천(月落在天), 수상지진(水上池盡).” 여덟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도 초기 교회사에서 이승훈의 호교(護敎)의 증거로 자주 회자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전승 과정이 모호하고,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이 1960년대에 갑자기 돌출한 증언에 의한 것이어서 검토가 필요하다. 더욱이 중간 전승 과정에서 글자가 뒤바뀌기까지 했다. 이 글에.. 2021.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