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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교회사327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0. 사학 매파 3인방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0. 사학 매파 3인방 사학 매파, 이집 저집 다니며 교리 가르치고 교회 허리 역할 가톨릭평화신문 2021.05.09 발행 [1612호] 교회의 허리 「사학징의」의 공초 기록 속에서 사학(邪學) 매파(媒婆)로 일컬어진 사람이 셋 있다. 복자 정복혜 간지대(칸디다)와 복자 김연이 율리아나, 비녀 윤복점 레지나가 그들이다. 정복혜는 4월 2일에 처형되었고, 김연이는 5월 22일에 처형되었으며, 여종 윤복점은 배교로 목숨을 건져 5월 18일에 영해(寧海)로 유배 갔다. 「사학징의」 중 비녀 윤복점의 형추문목(刑推問目)에 이런 내용이 있다. “너는 본시 사학의 매파(媒婆)로 양반 천민 할 것 없이 들락거리며 속여서 꾄 것이 이미 여러 해이고, 다닌 곳이 몇 군데나 되는.. 2021. 5. 9.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1) 바치초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죽음’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1) 바치초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죽음’ 중국 선교의 꿈 품은 채 하늘로 간 하비에르 가톨릭평화신문 2021.05.09 발행 [1612호] 유럽 대륙은 마르틴 루터를 시작으로 츠빙글리, 장 칼뱅을 거치며 독일, 스위스에 이어 토마스 크랜머와 헨리 8세에 의한 영국까지, 1500년도 초반은 연이어 일어난 종교개혁의 불길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1527년의 로마 약탈은 교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로마 약탈의 수모를 겪은 클레멘스 7세 교황에 이어 알레산드로 파르네세가 1534년 10월 13일 바오로 3세 교황으로 선출됐다. 교회 쇄신과 르네상스 진흥 바오로 3세 교황은 크게 두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것은 ‘교회 쇄신’과 ‘르네상.. 2021. 5. 8.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영성의 바탕 (2) 성모 신심 최양업 신부는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다른 어느 신심보다 깊이 간직하였다. 그는 성모님을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하는 데 있어 교회의 모범이 되시는 분으로 공경하였다. 성모님께서는 특히 사제의 영혼이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모성애로 사제들을 모든 위험이나 좌절로부터 보호해 주신다고 믿었다. 최양업 신부는 신학생 시절 스승 리브와 신부와 함께 “성모성심회”(聖母誠心會)에 가입하여 성모 신심을 키워나갔다. 그래서 인간적인 노력으로 헤쳐나가기 힘든 난관을 만날 때면 언제든 성모님의 도움을 구했다. 1849년 5월에는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중국 배를 타고 백령도를 통한 조선 입국.. 2021. 5. 7.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9. 간지대 정복혜와 성녀 칸디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9. 간지대 정복혜와 성녀 칸디다 복자 정복혜 간지대, 같은 세례명 중국의 서 칸디다와 닮은꼴 가톨릭평화신문 2021.05.02 발행 [1611호] ▲ 마태오 리치, 탕약망, 서광계 등과 나란히 그려진 서 칸디다의 초상화와 그녀의 은제 십자가 문구. 간지대, 간거다, 칸디다 세례명을 살피다 보니 유독 「성년광익」에 없는 간지대(干之臺)란 이름이 궁금해진다. 간지대는 복자 정복혜(鄭福惠)의 세례명이다. 그녀는 1801년 2월에 붙들려와서 4월 2일에 처형되었다. 간지대는 대체 어디서 온 이름일까? 「성년광익」에도 없는 성녀 이름을 정복혜는 어떻게 자신의 세례명으로 쓸 수 있었을까? 「사학징의」에 따르면 그녀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이합규(李鴿逵)였다. 그녀는 179.. 2021. 5. 5.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3) 중국 천주교 대표 평신도 서광계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3) 중국 천주교 대표 평신도 서광계 지위 고하 막론하고 천주교 전파에 앞장서 가톨릭신문 2021-05-02 [제3242호, 18면]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 비롯 서양 학문·천주교 교리에 감명 남경에서 구태소의 제안으로 마테오 리치 직접 만나기도 세례 받은 뒤 전교에 큰 역할 「기인십편」 「영언여작」 등 여러 교리서와 호교서도 저술 조선에 천주교 전파 시도 ‘눈길’ 상해교구에서 시복 추진 중 “주님께서 서광계에게 상을 내려 하루빨리 복자품에 오르게 하소서. 가경자 서광계 교우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중국 상해교구 ‘서광계 시복기도문’ 중) ■ 빛과 말씀의 만남 중국교회 평신도를 대표하는 서광계(徐光啓)는 1562년 상해현 태경방(太卿坊)에서 서사성(徐思誠)과 전(錢).. 2021. 4. 30.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영성의 바탕 (1) 하느님께 대한 사랑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46년 4월 26일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느님께 대한 깊은 사랑과 일치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는 이 모든 쓰라림을 하느님을 위해서 참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위로시요, 우리의 희망이시며, 우리의 원의시니,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죽습니다.” 그는 또한 같은 편지에서 그의 “유일한 동료 김대건과도 헤어져서 혼자 방 안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며 오직 하느님과 함께 있기가 소원”이라고 썼다. 이러한 내용은 그가 이미 신학생 시절부터 하느님과 긴밀한 일치의 삶을 살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최양업 신부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 2021. 4. 29.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8. 세례명 퍼즐 풀기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8. 세례명 퍼즐 풀기 중국음으로 읽어야 원음과 비슷… 어감 좋고 예쁜 글자로 대체 가톨릭평화신문 2021.04.25 발행 [1610호] 중국음으로 읽어야 풀리는 퍼즐 중국에서 쓰는 한자 이름은 중국 발음으로 읽어야 원어와 비슷해진다. 중국의 한자 이름이 조선으로 건너와 현지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앞글에 이어 세례명을 특정하지 못한 몇 가지 예들을 마저 살펴보겠다. 먼저 최조이(崔召史)의 세례명 이사발(二四發)은 엘리사벳(Elisabeth)을 가리킨다. 중국어 표기 의살백이(依撒伯爾)를 ‘이사보얼’로 읽는데, 줄여 읽으면 이사발로 들린다. 이사발을 중국음으로 읽을 경우 ‘얼쓰파’가 되어 영 딴말이 되고 만다. 흔히 이사벨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남판서 .. 2021. 4. 25.
[앞서 걸어간 길] 감사기도로 하늘에 닿는 사람들 [앞서 걸어간 길] 감사기도로 하늘에 닿는 사람들, 삼청공소 베타니아원 김정숙 소화 데레사 박사 삼청공소 신자들은 기도로 세상의 일을 이루어냄을 뼛속까지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2015년 10월 11일 삼청공소에서 임인덕(林仁德) 세바스티안 로틀러(Sebastian Rothler, 1935~2013) 신부 추모비를 세우는 날, 미사 중에 신자들이 은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였다. 우리를 기억해 준 은인들께 갚아달라는 기도 소리가 떨렸고, 그 순간 하나가 되어 훌쩍였다. “주님, 들으셨지요?” 영웅들의 사랑으로 채워진 삶의 터전 한센병이 발병한 자녀를 동네 모르게 내보낸 어머니가 저녁 후에 부뚜막에 밥 한 그릇 올려놓으면, 자식이 밤에 몰래 와서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집안에서 살지 못하고, 사회에서도 거두.. 2021. 4. 21.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0) 엠마뉴엘 로이체의 '중대한 문제'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0) 엠마뉴엘 로이체의 ‘중대한 문제’ 헨리 8세의 이혼, 영국과 로마 가톨릭의 결별로 이어져 가톨릭평화신문 2021.04.18 발행 [1609호] 1517~1521년, 마르틴 루터와 가톨릭교회 간 결별의 여파는 유럽에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미쳤다. 가톨릭교회가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의 후유증을 직접, 극적으로 경험한 것은 1527년 ‘로마 약탈’을 통해서였다.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사망할 때까지 매사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눈치를 살폈다. 그다음은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가 약탈을 당하던 바로 그해,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재위 1509~1547)는 아라곤의 캐서린(1485~1536)과 20년의 결혼 생.. 2021. 4. 20.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7. 세례명 이야기<상>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7. 세례명 이야기 초기 교회 신자들, 겉으로 표나지 않게 세례명 바꿔 불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4.18 발행 [1609호] 「사학징의」 속 정체 모를 세례명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세례명을 어떻게 정했을까? 그들은 성인 성녀의 이름과 행적을 어떤 경로로, 어느 범위까지 알 수 있었나? 세례명은 왜 이렇듯 쉬 알기 어렵게 다양한 형태로 표기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살펴보겠다. 유관검은 「사학징의」에 수록된 공초에서 세례명이 “서양의 도가 높은 사람의 이름을 본떠 짓는 것”이라고 했고, 정복혜(鄭福惠)도 공초에서 “사호를 부르는 것은 죽은 뒤에 좋다고 해서” 짓는 것이라고 한 대답을 보면, 서양에서 신앙으로 모범을 보인 성인 성녀의 이름을.. 2021. 4. 19.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2) 마테오 리치 신부와 중국교회의 '숨겨진' 이야기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2) 마테오 리치 신부와 중국교회의 ‘숨겨진’ 이야기 ‘유학자’ 마테오 리치, 본격적인 중국 천주교 시대를 열다 가톨릭신문 2021-04-18 [제3240호, 18면] 1582년 마카오 거쳐 중국 입국 ‘서역에서 온 승려’로 자처했던 전임자 루지에리 신부와 달리 유학자 입장에서 선교하며 중국인들 마음 여는 데 성공 뛰어난 학식과 언어 능력으로 사대부들로부터 큰 호응 얻어 마테오 리치가 최초로 지은 소성당 자리에 지금의 선무문 천주당, 즉 남당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남당은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훼손됐다가 1904년 새롭게 지어진 건물로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주보로 모신 주교좌대성당이다. 대성당 입구에는 지금도 리치 신부를 기억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중국교.. 2021. 4. 18.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6. 충주 교회의 저력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6. 충주 교회의 저력 신분·직능·성별 역할 분담 효율적으로 이루어진 ‘충주 교회’ 가톨릭평화신문 2021.04.11 발행 [1608호] 이기연 집안의 신앙 이기연 형제가 선두에서 이끈 충주 교회는 교회 창립기부터 다져온 저력이 있었다. 충주 교회는 당시 전국의 거점 지역 중에서 가장 기반이 단단하고 균형이 잡힌 차진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충주 교회의 출발은 이기연 이최연 형제가 권일신 집안과 사돈을 맺고, 그에게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충주에 살던 권철신의 처남 남필용(南必容, ?~1801)과 권철신의 사위 이재섭(李載燮) 등이 충주 교회의 출범을 함께 도왔다. 이기연의 사위인 권상익(權相益)도 충주에 근거지를 마련해 가세했다. 「사.. 2021.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