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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교회사327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3) 피터르 브뤼헬의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3) 피터르 브뤼헬의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사랑을 행하여라 가톨릭평화신문 2021.06.06 발행 [1616호] 325년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 이후 트렌토 공의회까지 모두 19번의 공의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500년간 두 번, 제1ㆍ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다. 트렌토 공의회는 이것만 봐도 얼마나 교회 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잠시 당시 공의회의 성격을 알기 위해 첫 번째(가장 먼저 사도들이 소집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일단 빼기로 하자)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제국 내에서 모든 종교를 허용하는 ‘종교.. 2021. 6. 7.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선교 영성 (1)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교 영성 (1) 열정과 노력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자세는 복음 선포에 대한 열정이다. 이러한 마음은 한계 상황의 어려움이나 난관을 극복하고 복음을 널리 전하도록 이끌어 준다. 최양업 신부는 조선 교회의 두 번째 사제로서 고국의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최양업 신부가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다음 중국에서 지내고 있을 때, 조선에 혹독한 박해가 지속되고 있었음에도 그는 조선 입국의 날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국에 복음을 전파하고픈 열망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에서도 조선을 가리켜 “우리의 포교지”라고 부르며 선교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양업 신부는 입국하여 사목활동.. 2021. 6. 4.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영성의 바탕 (5)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영성의 바탕 (5) 사목적 사랑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최양업 신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친교의 삶을 살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였다. 당시 유일한 방인 성직자로서 활동했던 그는 사목적 사랑 안에서 신자들과 친밀한 일치의 관계를 맺었다. 최양업 신부는 1850년 10월 1일자 편지에서, 자신이 교우촌을 방문했을 때 신자들이 반기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가 어떤 교우촌에 도착하면, 어른이고 아이고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모두 새 옷을 갈아입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리고 사제가 그들의 인사를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그들은 조금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들은 공소 회장들을 연방 들여보내 어서 인사를 올.. 2021. 6. 3.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5) 독일 아담 샬 신부와 조선 소현세자의 만남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5) 독일 아담 샬 신부와 조선 소현세자의 만남 독일 사제와 조선 세자의 우정, ‘조선 개교’ 희망 쌓다 가톨릭신문 2021-05-30 [제3247호, 18면] ‘중국 천주교회 제2 창설자’ 독일 출신 아담 샬 신부 청나라에서 8년간 체류했던 소현세자와 두터운 친분 조선 땅에 천주교 전파 위해 선교사 파견 물색 등 노력 끝내 목표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교회 역사의 서장 열어 청나라 흠천감감정 복색을 한 아담 샬 초상. 보헤미아 출신 동판화가 벤첼 홀라(Wenzel Hollar, 1607~1677) 작품으로 홀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테우스 메리안(Matthäus Merian)에게 사사 후 아담 샬의 고향 쾰른에서도 활동했다. 16세기 말 중국에 가톨릭을 ‘천주교’로 뿌리내리게 .. 2021. 5. 30.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3. 기억의 착종과 기록의 사각지대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3. 기억의 착종과 기록의 사각지대 판결 전 고문으로 죽임 당한 순교자, 「사학징의」 명단에서 누락 가톨릭평화신문 2021.05.30 발행 [1615호] 「사학징의」에 누락된 「신미년백서」 속 순교자 스쳐 가는 기록 속에 보석이 박혀 있는 수가 있다. 한쪽에서 지워져 말소된 정보가 다른 기록을 통해 보정되기도 한다. 기록의 교차 검토가 반드시 필요한 까닭이다. 반대로 상이한 내용을 담은 두 가지 정보로 인해 실상 파악에 혼선이 빚어질 때도 있다. 특히 세례명의 경우 이같은 착종이 비교적 심하다. 본인의 기술과 뒷 시기 제3자의 기록이 엇갈릴 때는 본인의 진술을 따르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중국의 세례명과 조선식 세례명이.. 2021. 5. 28.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2. 동정녀 신드롬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2. 동정녀 신드롬 동정 지키려 과부로 행세하며 함께 모여 신앙 공동체 형성 가톨릭평화신문 2021.05.23 발행 [1614호] 나도 아가타 성녀처럼 「사학징의」 속에는 동녀(童女)가 여럿 나온다. 동녀란 동정녀, 즉 신앙을 이유로 순결을 지켜 혼인하지 않는 여성을 말한다. 말하자면 수녀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그녀들은 어째서 동녀의 삶을 선택했을까? 동녀의 신앙적 근거는 어디에서 나왔나? 「사학징의」에 나오는 동녀는 윤운혜의 언니 윤점혜(尹占惠) 아가타, 정광수의 누이동생 정순매(鄭順每) 바르바라, 심낙훈의 누이동생 심아기(沈阿只) 바르바라, 이합규의 누이 이득임(李得任), 정분이의 친척 박성염(朴成艶), 조섭의 누이 조도애(趙桃愛) 아나스타시아, 강완숙 집.. 2021. 5. 25.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영혼을 돌보는 ‘어머니 교회’의 근본으로 돌아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5.23 발행 [1614호]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충격과 함께 시작된 1500년대의 교회는 1534년 파르네세 가문의 알렉산드로가 바오로 3세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지만(바치초의 ‘성 프란체스코의 죽음’ 편), 바오로 3세는 많은 남녀 수도회 설립을 인가해주고, 영성가들을 교회에서 보호해줌으로써 성인들의 시대를 열기도 했지만, 보편 교회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종교개혁가들에게 답변도 해 주어야 했다. 그것이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 주교좌성당에서 개.. 2021. 5. 22.
[특집 - 김대건 ·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배려하는 사제 최양업 토마스 [특집 – 김대건 ·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배려하는 사제 최양업 토마스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장) 신부님들은 본당과 특수사목지에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성무활동을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적인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사목적 배려’일 것입니다. 목자가 양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보다 더 큰 권한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양들을 직접 찾아가 배려하는 사목을 하셨던 이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었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의 근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신학생 시절의 토마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배울 때 성부와 성자의 일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토마스는 삼위일체의 제2위인 성자가 1위(성부)보다 덜 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능력이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말입니다!”.. 2021. 5. 21.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영성의 바탕 (4) 성인 공경과 순교자 신심 성인 공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해주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양업 신부는 특히 어려움과 곤경 속에서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1849년 5월 중국에서 해로를 통해 조선 귀국을 시도하던 중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면서 동시에 모든 성인 성녀께 도움을 간청했다.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단 한 사람의 죄인의 회개나 어떤 특별한 은총을 얻기 위하여 10년, 20년, 30년, 40년 또는 더 오랜 세월 동안, 열렬한 기도와 크나큰 희생과 힘들고 지루한 극기와 보속을 하느님께 바치셨습니까? 참으로 이러한 모범을 묵상하는 .. 2021. 5. 20.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1. 주인이 세 번 바뀐 여종 영애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1. 주인이 세 번 바뀐 여종 영애 노비 매매 증서가 신원 보증서 역할… 비선 조직 연결하는 연락책 가톨릭평화신문 2021.05.16 발행 [1613호] 미심쩍은 여종 사학 죄인이 대역부도죄로 사형되면 그 집의 재산도 몰수되었다. 국고로 귀속되어야 할 몰수 재산 중 돈이 될만한 것은 중간에 다 털어 저희들끼리 나눠 가졌다. 크게 한몫 잡는 일이어서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혈안들이 되었다.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이렇게 썼다. “정약종의 재산은 정부의 특별한 명령으로 모두 몰수되었다. 그의 적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집안이 복권되는 것을 영구히 막아, 복수를 할 수 없도록 만들고자 한 것 같다.” 이 와중에 정약종의 여종이었던 영애(永愛)에 대한 처분 문제가 .. 2021. 5. 14.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4) 한문서학서: 하느님 중국어로 말씀하시다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4) 한문서학서: 하느님 중국어로 말씀하시다 아시아에 ‘기쁜 소식’ 널리 전파한 한문서학서 가톨릭신문 2021-05-16 [제3245호, 18면] ‘명말청초’ 시기 서양 선교사들 중국 고전 익혀 문서선교 시작 중국인 학자들 도움 받아가며 한문으로 수많은 서적 저술 「천주실의」 등 다양한 책들이 조선 학자들에게까지 전해져 “문장을 써 내는 것 자체는 큰 성취다. 하물며 평범하지 않은 중국어 책, 그것도 전국 열다섯 개 성에서 두루 통용되어야 할 책을 쓰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중국 서적은 일본, 조선, 베트남의 백성들도 읽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나라 문인들도 모두 중국 글자를 알기 때문이다…. 실정이 이러하다면, 우리가 쓴 책은 중국인만이 아니라 전체 중국 문화권에 .. 2021. 5. 13.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영성의 바탕 (3) 순명과 인내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최양업 신부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이란 표현을 자주 썼는데, 이는 그가 항상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계획 안에서 살기 원했음을 드러내준다. 그는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분이므로 그분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 믿었다. 그가 하느님의 뜻에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는 1849년 조선 입국로를 찾기 위해 노력한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거기서 그는 비록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인간적 의지와는 달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라도 기꺼이 그 뜻을 따르려는 순명의 자세를 보였다. “제가 거룩한 순명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하였더라면, 저는 벌써 우리 포교지인 조선.. 2021.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