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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교회사327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0) 서양 과학기술의 중국 전래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0) 서양 과학기술의 중국 전래 최신 수학·천문학 전해졌지만 ‘중화주의’ 높은 벽 가로막혀 가톨릭신문 2021-08-15 [제3257호, 18면] 복음전파 나섰던 예수회원들 서학서 번역해 과학기술 소개 서양천문학과 지리학 비롯해 근대과학 폭넓게 다뤘음에도 뿌리 깊은 현지 이념 극복 못해 “선이란 길이만 있고 폭이 없는 것으로 평면 하나에 빛이 비침과 안 비침 사이 틈과 같다.” 이것은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가 공동번역한 「기하원본」(幾何原本, 1607)에서 선을 정의하는 구절이다. 원래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은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폭이 없는 길이다”로 시작한다. 사전 설명도 주해도 없이 최소한의 간결한 정의로 추상적 공리체계를 전개한다. “A는 B다”.. 2021. 8. 12.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선교와 사목 영성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선교와 사목 영성 교회 안에서의 일치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복음 선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교회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므로 개인 혼자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제들의 복음 선교 활동이 주교를 포함한 다른 성직자는 물론 모든 형제자매와 일치하고 협력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사제품을 받은 후 순교하기 전까지 페레올 주교에게 여러 차례 서한을 보냈다. 그중 옥중에서 보낸 서한을 보면, 그가 페레올 주교를 얼마나 극진히 공경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를 “지극히 사랑하올 저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렇게 적었다. “정신적으로 주교님의 발아래 엎드려 지극히 사랑하.. 2021. 8. 7.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2. 보석처럼 빛났던 소년 황사영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2. 보석처럼 빛났던 소년 황사영 임금의 총애 받던 황사영, 10년 뒤 천주교 핵심 인물로 부상 가톨릭평화신문 2021.08.08 발행 [1624호] 무덤 속 백자합에서 나온 비단천 1980년 9월 2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속칭 ‘가마골’로 불리는 홍복산 자락에서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 1775~1801)의 묘소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무덤 좌측을 일부 개봉하자 관 좌측 하부에 오석 7개가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어 놓여 있었다. 곧이어 십자가 좌측 끝에서 청화백자합 하나가 나왔다. 이 백자합은 뚜껑이 깨진 옹기 항아리 속에 들어있었다. 백자합의 뚜껑을 열자 바닥에 덩어리진 천 조각이 나왔다. 비단으로 보이는 이 천은 검게 변색되어 원래의 색채는.. 2021. 8. 6.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8)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8) 자코모 조볼리의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사랑의 혁명가, 소외된 이들에게 십자가의 빛을 비추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8.08 발행 [1624호] ▲ 자코모 조볼리,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1737), 룬가라의 코르시니 궁(Palazzo Corsini alla Lungara), 이탈리아 로마. 트렌트 공의회로 시작된 가톨릭교회의 개혁은 1600~1800년대를 규정하는 교회의 얼굴이 됐다.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자선, 곧 애덕 활동이 제시됐다. 그것은 필립보 네리와 카를로 보로메오, 성 가밀로, 페데리코 보로메오에 이어 또 다른 큰 성인으로 이어졌다. 오늘 소개하는 빈센트 드 폴(Vincent de Paul, 1581~1660) .. 2021. 8. 5.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1. 남대문과 중구 일대의 약국 주인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1. 남대문과 중구 일대의 약국 주인들 서울에만 약국 9곳 등장… 초기 교회 연락 거점·집회 장소 가톨릭평화신문 2021.07.25 발행 [1623호] 약값을 어찌 함부로 받겠습니까?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윤유일의 아버지 윤장(尹)은 최창현과의 관계를 따져 묻는 형조의 공초에, 그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4년 전인 1797년에 딸의 병 때문에 상경해서 최창현의 집안사람인 최가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약을 지었다. 다른 곳에 비해 약값이 터무니없이 쌌으므로 윤장이 괴이하게 여겨 연유를 물었다. 함께 있던 최창현이 이렇게 대답했다. “천주께서 하늘에 계시면서 사람의 마음속 선악을 살피시니 약값을 어찌 함부로 받겠습니까?” 윤장은 그래서 최창현이 사학하는 사.. 2021. 7. 26.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9) 조선 연행사의 북경 성당 방문 이야기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9) 조선 연행사의 북경 성당 방문 이야기 연행사 필수 코스였던 천주당, 신앙 전달의 다리를 놓다 가톨릭신문 2021-07-25 [제3255호, 18면] 조선 외교사절단 ‘연행사’ 서양 과학기술 접하는 창구로 천주당 찾아 선교사들과 교류 한국교회 첫 영세자 이승훈도 연행사 일원으로 북경 방문 조선 연행사(燕行使)가 본 북경의 성당들은 그야말로 신세계이고, 별천지였다. 서양의 신기한 문물로 가득찬 성당은 뒤이어 파견되는 연행사의 인기 만점 견학코스가 됐다. 그들은 북경의 성당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고, 무엇을 체험했으며, 어떤 문화충격을 받았을까? 연행사의 성당 방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동서남북 네 곳에 성당이 있었던 청나라 수도 북경부터 살펴보고 연행.. 2021. 7. 23.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선교와 사목 영성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선교와 사목 영성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기도 김대건 신부는 박해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조선 교회를 위해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 안에서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1846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주님께서 성교회를 고난을 통해 자라게 하신다고 가르치며 어려운 시기를 기도로써 이겨 나아가도록 당부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옥중 서한의 추신에서 신자들에게 박해가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요청하였다. “이런 환난도 또한 천주께서 허락하신 바이니, 너희는 감수하고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려라.” 최양.. 2021. 7. 20.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7) 바치챠의 '예수 이름의 승리'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7) 바치챠의 '예수 이름의 승리' 예수님이 비추는 찬란한 황금빛이 모두에게 가톨릭평화신문 2021.07.18 발행 [1622호] 트렌토 공의회는 여러 면에서 교회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줬다. 공의회 이후에 선출된 교황들의 개혁 의지도 교회가 쇄신하고 변화된 생활을 하는 데 동력이 됐다. 우선 성 비오 5세(재위 1566~1572)는 1569년 잘츠부르크 지역 시노드 소집을 독려했고, 「로마 교리서」를 출판했으며 「성무일도서」를 통합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사용한 「미사 경본」을 개정했다. 그레고리오 13세(재위 1572-~1585)는 로마를 비롯한 교구 신학교 설립을 장려했고, 교황 대사에게 더욱 교회다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개혁의 수단이 되게 했다. 특히 .. 2021. 7. 16.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0. 명도회는 조선 교회 그 자체였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0. 명도회는 조선 교회 그 자체였다 명도회, 신유박해 이후에도 암흑기 조선 교회 유지한 밑바탕 가톨릭평화신문 2021.07.18 발행 [1622호] 풀뿌리 교회의 든든한 토대 명도회는 일개 신심 단체가 아니었다. 주문모 신부에 의한 명도회 도입은 당시 조선 교회가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한 것과 다름없었다. 기존의 전교 방식과 신자 교육 및 신앙 활동 전반에 걸친 혁신이 명도회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명도회는 조선 교회 그 자체였다. 명도회의 출범 직후 정조의 급작스런 서거는 예상치 않게 명도회의 대성공을 도와준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불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신유박해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이때 뿌려진 명도회의 사랑방 공동체 모임은 완전.. 2021. 7. 15.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8) 첫 중국인 사제이자 주교 - 나문조(羅文藻)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8) 첫 중국인 사제이자 주교 - 나문조(羅文藻) 선교사 추방되던 어려운 시기에 중국 선교 도맡아 가톨릭신문 2021-07-11 [제3253호, 18면] 도미니코회 입회 후 사제품 필리핀-중국 오가며 선교활동 화합과 성실함 통해 큰 성과 남경교구장 주교 된 이후 중국인 성직자 필요성 강조 선교 관할 지역이던 조선에 선교사 파견 꿈 꾸기도 대만 가오슝(高雄)에 있는 문조외국어대학에 세워진 나문조 동상. 문조외국어대학은 나문조의 이름을 따서 1966년 우르슬라수녀회가 설립했다. 나문조(羅文藻, Gregorius Lopez, 1616~1691)는 중국인 최초의 사제이면서 최초의 주교이기도 하다. 나문조의 생애는 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중국 천주교회 역사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21. 7. 11.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6) 스카라무챠의 페데리코 보로메오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6) 스카라무챠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기근과 페스트에 쓰러진 이들을 살펴보는 목자의 눈길 가톨릭평화신문 2021.07.11 발행 [1621호] ▲ 루이지 스카라무챠,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1670년), 유화, 이탈리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도서관 소장. 1563년, 트렌토 공의회 폐막과 함께 공의회 결정 사항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 중 교회 쇄신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은 교회 지체들의 인문주의적인 삶 곧 ‘휴머니즘의 실천’이었다. 지난 150년간 교회 안에서도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실천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혼선이 있었다. 1400년대,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한창 꽃을 피울 때, ‘로마 학술.. 2021. 7. 10.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9. 명도회 6회의 조직 구성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9. 명도회 6회의 조직 구성 명도회, 6회 집단 지도 체제로 의사 결정권 가진 최고 기관 가톨릭평화신문 2021.07.11 발행 [1621호] ▲ 대전교구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에 전시된 이종상 화백의 순교 기록화 ‘손 요한의 신리 신자들에 대한 염습’. 박해시절 신앙을 지키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피난길을 떠났던 손 요한은 그때에 순교하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을 염습하기 시작한다. 전염병에 걸리고 부패한 시신을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묵묵히 염습을 하며 묻어주었다. 이런 손 요한의 모습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다. 혈당(血黨)과 집회 형태 명도회의 예상 밖 호응에 고무된 주문모 신부의.. 2021. 7. 9.